
중국 내 권력 이동에 대한 온갖 추측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대만과 인도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력 이상설이 SNS와 유튜브 등에서 다양한 경로로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이다.
다음달 중국 내 권력 구조를 재정비하는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아 미국 등 주요 언론에서도 이같은 이슈에 주목하면서 '실각설' '건강이상설'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불안한 휴전 속에서 언제든지 무역 전쟁이 불붙을 수 있다는 관측이 많지만 '희토류 카드' 등을 내세워 준비된 관세 전쟁을 벌였다는 평가도 많다.
이런 와중에 지난 4월 이후 중국 권력 내부에 이상 기류가 있다는 의구심이 조금씩 제기됐다.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해외에 체류 중인 중국 반체제 인사를 중심으로한 조직적인 유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인 권력 투쟁 속에서 이미 시 주석의 권력이 약화됐다는 얘기까지 퍼졌다. 대만과 인도 매체, 일부 유튜브에서만 다뤄지던 이슈가 수면 위로 급격하게 떠오른 건 미국까지 가세하면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플린은 X(옛 트위터)에 "중국에서 권력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권력 서열 6위인 딩쉐샹 국무원 부총리, 천지닝 상하이 당서기, 장여우샤 공산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의 사진도 함께 올렸다.
또 그레고리 슬레이턴 전 버뮤다 주재 미국 대사는 뉴욕포스트에 "올 8월에 시 주석이 건강 문제로 4중전회에서 물러날 수 있다"고 했다.
대만 매체들은 이런 주장에 앞장서서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만 자유시보는 "시 주석의 인민해방군 최측근인 허웨이둥과 먀오화가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실각설을 부추겼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다음달 개최가 예상되는 4중전회에서 시 주석의 후임이 지명될 것이라는 데 있다.

실제 군 최고 지도부인 중앙군사위에서 서열 5위인 먀오화가 최근 실각했다. 웨이펑허와 리상푸 등 전 국방부장(장관)도 잇따라 부패 혐의로 실각했다.
시 주석 취임 후 꾸준히 군내 부패 척결 작업이 이뤄지긴 했지만 근래 들어 최측근만 연이어 숙청되면서 실각설에 불을 붙였다. 시 주석과 군 서열 2위인 장 부주석과 권력 다툼을 이런 숙청의 배경으로 이해한 탓이다.
지난달 말 중국 공산당이 의사결정·심의·조정 기구를 새로 설치해 국가 중대사업의 기획과 집행을 맡기기로 한 점도 근거로 꼽혔다. 시 주석이 이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리는 17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한 점도 중국 내 권력 이동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취임 후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참석한 회의에 불참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다는 시각이다.
실각설이 무르익던 지난 4월에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5월 러시아, 6월 중앙아시아 등 공격적인 외교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올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압박과 관세 협정 공세에 맞서기 위해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무역국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데, 중국 내 입지가 불안한 상황에선 어려운 행보란 지적이다.
중국 내 권력 이동에 누구보다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미국이 먼저 중국에 만남과 협상을 요구하는 것도 어색하다는 논리도 있다.
이를 두고 홍콩 사우스모닝포스트 등 홍콩 유력 매체는 "시 주석이 군부 내 부패 세력 숙청을 지속하는 등 군권 장악에 이상이 없다"고 파악했다. 호주의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 역시 "시 주석은 경제·군사·외교 수단을 모두 장악하고 있으며 중국의 장기 목표들을 공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던 중국 정부도 이달 들어 실각설이 기정사실화된 듯 퍼지자 본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시 주석이 중앙재경위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모습을 내보냈다. 이날 회의에는 리창 국무원 총리(중국 공식 서열 2위)를 비롯해 차이치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5위), 딩 부총리(6위) 등 최고위급 지도부와 당정 책임자들이 참석했으며, 이 자리에서 시 주석은 "중국식 현대화 건설 임무는 매우 무겁고, 직면한 집권 환경은 상당히 복잡하다"며 기강 잡기에 나섰다.
신화통신은 당 이론지인 추스에 시 주석이 2016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역사를 창조하는 중국 인민의 위업'을 언급한 연설 내용을 묶어 게재하기도 했다.
아울러 오는 9월 3일 개최되는 항일 전쟁 승전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해외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하고, 시 주석이 이때 특별 연설을 한다고 발표했다.
베이징 외교가 한 관계자는 "다음달 4중 전회에서 후임자 지명 등이 이뤄진다면 열병식 연설 발표 등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현재 중국 시스템에서 군부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중국 내 정치나 군사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착오"라고 전했다. 다만 시 주석의 군내 사정 작업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군내 피로감과 불만이 쌓일 수는 있다는 설명이다.
오는 2027년으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제21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4연임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시각도 있다. 다만 올해 72세인 시 주석의 물리적 연령 등을 감안할 때 점차 권력 기반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다음달 4중 전회를 통해 시 주석과 장 부주석 등의 명확한 거취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시 주석의 당·정·군 장악력과는 무관하게 중국 공산당의 권력 안정성과 장기 전략 기조는 이어질 것이란 관측도 많다.
베이징=김은정 특파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