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이럴 때 해외에서 들려오는 뜻밖의 'K-컬처 희소식'은 문화예술에 냉소적인 일반인도 함께 축하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일종의 선물이다. 살짝 시간을 되돌려보자. 코로나 팬데믹 때인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K팝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 및 빌보드 뮤직 어워즈 3관왕에 올랐고, 지난해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낭보를 전했다. 모두 K-컬처가 빚어낸 눈부신 업적으로, 대중예술과 순수예술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칭하는 K-컬처가 글로벌 컬처로 자리매김한 순간이다.
잠시 주춤했던 K-컬처에 최근 창작 뮤지컬이 가세함으로써 그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흐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 최고 권위의 공연예술 시상식인 토니 어워즈에서 창작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이 작품상 등 6관왕을 거머쥐었다. 미국 주요 매체가 ‘토니 어워즈의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할 만큼 의미를 부여했는데,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하나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등 세계 양대 뮤지컬 시장에서 비주류로 인식되던 한국 창작 뮤지컬이 토니상 수상으로 예술적 우수성과 대중적 인기를 한꺼번에 입증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뒤를 잇는 제2, 제3의 한국산 창작 뮤지컬 등장할 가능성이다. 요약하자면, K-뮤지컬의 뛰어난 작품성과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독식이 일회성에 그칠지, 아니면 다른 국내 창작 뮤지컬의 뮤지컬 본고장 진출에 촉매제로 작용할지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양존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척박하기 짝이 없는 창작 뮤지컬 제작 및 유통 환경에서 이뤄낸 쾌거라는 점에서 찬사에 인색해선 안 된다. 다만 이쯤에서 국내 창작 뮤지컬의 토니상 수상에 숨겨진 본질적 함의를 짚어야 한다. 창작 뮤지컬은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비상업적 특성을 지닌 순수예술로 분류되어 국가의 공적 지원을 수반하고 있지만, 현실은 창작 뮤지컬 지원에 후하다고 보기 어렵다. ‘어쩌면 해피엔딩’만 하더라도 국내에 소개된 지 10년이 됐으나 정부 지원은 201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뮤지컬 해외공동제작지원 사업에 선정돼 일본 공연을 위해 3억 원을 받은 게 전부다.

창작 뮤지컬에 대한 공적 지원은 어쩌면 정부의 주된 관심사가 아닐 수 있다. 뮤지컬은 영리를 좇는 라이선스 중심의 상업성 짙은 대극장용 예술로 간주된다. 대학로 소극장이 주 무대인 실험적인 창작 뮤지컬에 대한 지원도 당위성이 약하고, 이를 해외 유통 등으로 연결하는 공적 시스템 또한 매끄럽지 않다. 제작 지원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유통 지원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도하는 이원적 구조로는 창작 뮤지컬의 글로벌 시장 진입에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국가가 운용하는 문화예술진흥기금(문예기금)을 위시한 순수예술 분야의 재정 여건이 전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창작 뮤지컬 같은 주류 예술이 아닌 장르가 연극, 클래식 음악, 무용 등 터줏대감 격의 장르에 상대적으로 밀려나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모색할 때가 됐다. 문화산업 성장을 문화예술 분야의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한 이재명 정부에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순수예술 분야 지원의 시드머니인 문예기금 재원을 안정화하면서 실험적 예술 장르 지원을 늘리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동시에 창작 뮤지컬 등 토종 예술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제작 및 유통 지원 시스템 개편에도 힘이 실린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땀과 눈물이 ‘어쩌면 새드엔딩’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