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수열과 이하느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이하느리는 지난해 헝가리 버르토크 국제 작곡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그가 예술의전당이 2023년부터 연 2회씩 여는 공연인 ‘최수열의 9시 즈음에’ 팬이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단 한 회만 빼고 모든 회차를 관람했을 정도다. 이 공연은 다양한 현대음악을 소개하겠다는 취지로 예술의전당이 기획했다.
최수열도 이하느리에게 매료된 건 마찬가지. 처음엔 그를 10대 신예 작곡가 정도로만 여겼단다. 계속된 입상 소식을 지나칠 수 없었던 최수열은 지난해 이하느리가 낸 곡인 ‘미뉴에트’를 듣게 됐다. “곡을 맡겨야겠다”고 마음먹는 데 30초도 안 걸렸다고. 이하느리는 오는 3일 열리는 올해 첫 ‘최수열의 9시 즈음에’를 위해 10여 분 길이 타악기 협주곡을 짰다.
타악기 연주는 퍼커셔니스트 김은혜가 맡는다. 최수열은 “타악기 연주자가 기타를 타악기처럼 연주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라며 “악보만으로도 작곡가가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신곡 제목은 ‘As if……I(애즈 이프 아이)’. ‘나라면’이란 뜻과 무관하게 알파벳 모양에 끌려 이하느리가 붙인 곡명이다. 최수열은 “소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진은숙·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처럼 거듭 연주할수록 결과물이 좋아지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공연 첫 곡으론 1971년생 프랑스 작곡가인 피에르 조들로프스키가 전자음악과 타악기 독주를 섞은 곡 ‘시간과 돈 파트1’을 배치해 관객이 이하느리의 작품과 비교해 들어보도록 했다. 이하느리가 중심이 된 프로그램 구성이다.
최수열은 악기 소리에 이끌려 지휘자가 됐다. 이하느리처럼 작곡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그쪽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생각에 여러 악기로 나만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지휘자가 됐다고.
이하느리는 “인성(사람의 목소리)을 소재로 한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학년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석사 학위를 따고 싶어 독일어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