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소비쿠폰’을 나눠주면 어디에 쓰겠나”는 질문에 “한우 한 번 사 먹어 보고 싶다”고 답하는 이들이 많다. ‘육류계의 에르메스’인 한우는 평상시에 좀체 먹기 어려워서다. 마침 요즘 한우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30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 전국평균 소고기(1+등급·안심) 100g당 소비자가격은 1만3966원으로 나타났다. 작년(1만3536원)과 비슷하고 평년(1만4634원) 대비로는 4.4% 떨어진 수준이다.
다른 축산물과 비교해봐도 한우 물가는 눈에 띄게 안정적이다. 당장 수입 소고기부터 몸값이 고공행진하고 있어서다. 미국산 소고기(갈비·냉동)는 100g당 4408원으로, 1년 전(3954원)보다 11.5% 높고 평년(3389원) 대비로는 30.1% 뛰었다. 돼지고기(삼겹살)는 100g당 2696원으로 평년(2617원)보다 3% 높고, 수입산 돼지고기도 100g당 1459원으로 작년(1457원)과 비슷하지만, 평년(1400원)보다는 4.2% 올랐다. 계란 한 판은 4년 만에 7000원을 넘었다. 계란(특란 30구) 가격은 7186원을 기록해 평년(6595원)보다 9.0% 상승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우 가격을 보는 물가 당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한우 가격만 저렴한 이유가 따로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으로 시계를 돌리면 지금 한우 가격이 왜 내려갔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해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자 정부는 ‘총수요 진작’ 차원에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나눠준다. 정부는 2020년 5월 ‘제1차 재난지원금’으로 전 국민에게 100만원(4인 이상 가구 기준)씩 보편 지급했고, 같은 해 9월 다시 소상공인·자영업자(인당 50만~200만원)나 법인 택시 기사(인당 100만원) 등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했다.
국민들은 이 돈으로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사기 시작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인 것이 ‘한우’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우는 다른 축산물보다 두 배 이상 비싸 손대기 어렵다. 그런데 재난지원금이 상황을 바꿨다. ‘한(우)풀이’를 하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우는 음식 중에서도 손에 꼽는 ‘사치재’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경제가 성장할수록 소비가 더 많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통계청 가축 동향 조사 자료를 보면, 한우 사육 마릿수는 2003년 1분기 116만3000마리에서 2017년 2분기 265만5000마리로 약 14년 새 2.28배 늘어난다. 같은 기간 젖소는 27.2% 감소했고, 돼지는 15.6% 늘어난 것과 비교된다. 닭은 무려 70% 늘었는데, 닭은 돼지나 소고기보다 가격이 저렴한데다 치킨 같은 음식의 음식 재료로 인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재난지원금으로 한우 소비가 크게 늘자 가격은 불기둥을 찍었다. 2020년 5월 23일 자 한국경제 1면 톱 기사 제목이 <단군 이래 최고가 찍은 한우>일 정도다. 당시 기사를 보면 그해 5월 21일 한우 도매가는 ㎏당 2만906원으로, 1995년 물가 통계용 조사를 시작한 뒤 가장 높았다. 전년(1만6757원) 대비로는 24.8% 오른 가격이다. 기사는 한웃값이 오른 이유로 한우 등급제 개편에 따른 소 도축 시기 지연, 미국산 소고기 수급 차질 등과 함께 재난지원금 지급에 따른 소비 증가를 지적했다.

한우 사육 기간은 평균적으로 30개월. 이 ‘한우 버블’은 2022년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 터진다. 축평원에 따르면 한우(1+등급·안심) 연평균 소비자가격은 2019년 100g당 1만2822원에서 2021년 1만6499원으로 단숨에 4000원 가까이 올랐다. 한 근(600g)에 2만원 넘게 뛰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2022년 1만5751원, 2023년 1만3817원으로 급락했다. 지난해 연평균 가격은 1만3600원에 불과했다.
“가격이 내려가서 좋다”는 건 소비자 입장이다. 한우 업계는 난리가 났다. ‘소 키운 값’조차 받지 못할 지경이 되자 업계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한우법’을 밀어붙이고, 윤 정부는 “특정 축종만을 위한 법안을 만들 수는 없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악순환도 벌어진다.
이번엔 어떨까. 정부는 소비쿠폰이 지급되더라도 2020년 같은 상황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한우는 지금도 전반적으로 공급과잉 상태”라며 “소비쿠폰으로 한우 소비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가격 급등과 과잉 생산이 반복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고’로 감당 가능하다는 것이다. KREI도 한우 사육 마릿수가 2026년까지 감소하다 2027년 이후 증가세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우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도축 마릿수는 2028년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론 한우 농가가 소비쿠폰에 거는 기대는 크다. 축산업계는 이번 소비쿠폰이 어려운 축산농가에 활력을 불어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육우 사육농장 수는 올 3월 기준 8만1000곳으로 1년 전보다 6.0% 줄었고, 농장당 사육 마릿수는 41만6000마리로 1.0% 늘어나는 데 그쳤다. 농가가 경쟁하는 과정에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