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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면 눈 뜨고 코 베여…"기술 지키려면 법정 두려워 마세요" [오성환의 지재권 분쟁, 이기는 쪽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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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기술 받아 독자 제품 출시 빈번
특허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다퉈야
증거 탄탄해야 승소…정교한 대응必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기술 탈취. 말 그대로다. 땀 흘려 만든 기술을 누군가 빼앗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대기업과의 공동 개발이나 투자 제안 과정에서 벌어졌다면 소송을 맡은 변호사 입장에선 상당히 복잡한 지점들과 마주하게 된다. 중소기업에서 먼저 특정 기술을 제안하고 개발 관련 협의를 이어가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 기술이 대기업의 이름으로 등록되거나 상품화돼 시장에 나오는 장면을 본다면 분노와 절망이 교차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러 차례 이런 종류의 사건을 대리했다. 대기업이 기술 제안서를 제출받은 직후에는 감감무소식이다가 6개월 후 해당 기술과 거의 유사한 구조의 특허를 출원하고 제품을 출시한 사례가 있었다. 공동 개발 약정을 체결했으나 기술 이전 이후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자체 제품으로 출시한 뒤 원(原)개발자의 존재를 무시한 경우도 있었다.
손해 배상받으려면 소송 불가피
이런 사건에서 의뢰인들은 통상 공정거래위원회 신고부터 검토하곤 한다. 하지만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경쟁 제한성, 시장 지배력 남용 등 경제법적 요소에 초점을 두기에 당사자의 권리 회복보다는 제도 개선 권고나 과징금 제재에 머무를 때가 많다. 따라서 실질적인 손해 배상과 기술 귀속, 사용 금지 등을 원한다면 민사 소송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기술 탈취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계약 위반이 아니라 특허법 위반 또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수행했던 한 사건을 소개하자면, 피고인 대기업은 원고의 기술 관련 자료를 전달받은 뒤 이와 유사한 구조로 제품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하고 시장에 출시했다. 우리는 이를 "타인의 기술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사용한 행위"로 보고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해당 기술 자료가 비공개로 제공됐고, 세부 기능과 성능이 기술 제안서나 시연 자료에 명확히 드러나 있었다는 점에서 영업비밀 또는 준 영업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정보임을 내세웠다.

부정경쟁 행위가 인정되기 위해선 피해자 소유의 정보가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며 합리적 보호 조치가 존재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동식 저장매체(USB)에 담아 보낸 자료라도 비밀유지각서(NDA), 이메일 수신 확인, 접촉 경과 기록 등에 관해 정리된 문서가 있다면 법정에선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의뢰인 대부분은 이런 부분에서 무심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상담 초기 단계부터 "당시 주고받은 문서, 녹음파일, 회의록 등 가능한 모든 기록을 모아보자"고 조언하곤 한다. 이 분야에서 초동 증거 확보는 승소 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요소다.

특허법 위반을 병행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이 취득한 특허가 기존에 제공된 자료에 기초했다면 그 특허 자체를 무효심판으로 공격할 수 있다. 동시에 특허권자 명의 변경 청구나 실시 금지 가처분 등을 함께 진행하면 기술을 탈취한 쪽이 시장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소송을 통해 단순히 손해를 배상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술의 원소유자를 회복시킴과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다.
계약 이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필자는 지금도 중소기업을 대리해 대기업을 상대로 부정경쟁방지법 및 특허법 위반 소송을 수행 중이다. 기술 개발 과정이 담긴 문서, 미팅 당시 녹취록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 증거가 정교하게 구성돼 있어 법원에서도 기술 제공과 침해 정황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기술 탈취 소송은 경험과 전략이 결합돼야 하는 분야다. 단순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며 기술 자료의 법적 성질, 제공·사용 경위, 침해의 유사성과 고의성을 입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기술을 보호하려는 기업은 계약 이전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NDA는 기본이고, 기술 제안서에도 비밀성, 독창성, 사용 제한 문구 등을 명확히 기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술 이전 후 대기업의 사용 양태를 주의 깊게 추적하는 것이다. 이상 징후가 있다면 조기에 감지해 증거를 남겨야 한다. 소송은 이미 기술이 사용된 뒤에야 시작되기 때문에 증거가 없는 기술자는 법정에서 '억울한 피해자' 이상이 되기 어렵다.

기술 탈취 사건은 단순한 분쟁이 아니다. 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전면전'이다. 그러나 동시에 제대로 준비하고 정교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다퉈볼 수 있는 영역이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다룰 때마다 늘 같은 조언을 한다. "기술은 만든 사람이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가져갈 것이다." 기술을 지키는 법, 자신의 기술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
오성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ㅣ 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2013~2017년 특허청 심사관으로 심사, 심판, 특허법 개정 등 업무를 수행했다. KAIST 공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지식재산권법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9~2023년 법무법인 바른을 거쳐 2023년부터 동인에서 변리자이자 특허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지적재산권법 전문 변호사로 등록돼 있으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대한변협 대의원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도 역임하고 있다.

오늘의 신문 - 2025.07.0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