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도 새벽까지 잠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쿡쿡 쑤셔오는 배를 감싸 쥐고, 남자는 다시 한번 밤바다로 향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 해변. 귓가를 스치는 바람은 차갑고 날카로웠습니다. 북해의 파도는 지칠 줄 모르고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끝이 없는 불면증과 위장병의 고통, 막막한 미래, 실패로 끝난 사랑…. 걱정과 불안은 어둠 속에서 환상처럼 피어나 남자의 눈앞을 어른거렸습니다. 먼동이 틀 때까지 남자는 그 환상들과 함께 해안가를 서성였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이 밤새 어둠 속에서 보았던 그 환상을 그대로 그림 속에 옮겨놓았습니다. 훗날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잠들 수 없다는 건 축복이자 저주였다. 내 그림은 그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행할 때 걸작을 그렸지만, 삶이 편안해지자 더 이상 위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남자. 20세기 초 벨기에 미술이 낳은 가장 외로운 천재, 레옹 스필리에르트(1881~1946)의 작품과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레옹은 1881년 오스텐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는 등대지기였고, 아버지는 향수 사업으로 성공한 상인이었습니다. 레옹은 할아버지를 더 닮았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이런저런 상상을 더 즐기는 내향적인 성격이었거든요. 여기에 더해 레옹은 어릴 때부터 천식과 심각한 위장병, 불면증을 앓았습니다. 그 탓에 성격은 더욱 예민하고 복잡해졌습니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 ‘검은 고양이’를 비롯한 에드거 앨런 포의 우울하고 몽상적인 이야기가 레옹의 친구였습니다.
“학창 시절 레옹은 늘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레옹의 친구들은 훗날 그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교과서 여백이나 공책에 연필로 그리곤 했습니다. 재능은 확실했습니다.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가 열여덟 살의 그를 미술 아카데미에 곧바로 보내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레옹은 석 달 만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위장병이 도졌기 때문이었지요. 레옹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사실 작품에 끼친 영향만 놓고 보면, 이는 잘된 일이었습니다. 레옹은 기본기를 더 닦을 필요가 없는 천재. 정식으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은 덕분에 그의 화풍은 식상해지지 않고 독창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레옹이 열아홉살이던 1900년, 아버지는 그에게 큰 색연필 상자를 사 줬습니다. 레옹은 그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와 이를 둘러싼 북해의 풍경. 그 모습은 검은색, 회색, 군청색, 고동색으로 가득했습니다. 레옹의 색연필 상자에서는 그래서 늘 어두운색부터 닳아 없어졌습니다.



이 시기, 레옹은 드만의 딸과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둘 사이는 잘되지 않았습니다. 레옹은 또다시 낙담했습니다.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했고, 연애는 실패했고, 앞길은 막막하고, 어딜 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 새로운 삶으로 탈출하고 싶었던 그는 1903년 벨기에의 식민지였던 콩고로 건너가 일하려 했지만, 몸이 지나치게 허약하다는 이유로 이주를 거부당하는 일까지 겪습니다. 이 무렵 레옹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행운이 나에게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 결국 그 끝은 비참함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고통은 레옹에게 예술적 전성기를 가져다줬습니다. 한밤중 그는 밖으로 나가 아무도 없는 오스텐드의 조용한 길거리를 걸었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해안의 긴 산책로. 그곳에서 북해를 바라보며 레옹은 불안을 곱씹었습니다. 그가 겪은 실패와 아픔은 목탄과 먹물이 되어 화폭 위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흔들리는 여인, 바닷가를 응시하는 혼자인 사내, 밤의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거울 속 창백한 얼굴. 그 모든 장면은 레옹의 마음속 풍경이었습니다.



불안이 깊어질수록 작품들도 더 깊어졌습니다. 텅 빈 해안가, 부두를 따라 늘어선 외로운 가스등, 넓고 텅 빈 모래사장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계단,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검은 바다를 담은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작품 속에 펼쳐졌습니다.
가족이 생기자 그의 삶은 안정됐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덕분에 재정도 안정됐습니다. 외로움과 불안이 줄면서 위통과 불면증도 훨씬 덜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림 속에서 날카롭게 빛나던 불안도 희미해졌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의 작품은 전보다 더 부드럽고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수준은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행복과 함께 그는 예술적인 번뜩임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전의 작품은, 불안과 고통으로 상처받은 영혼이 내지르는 비명과도 같았습니다. 우울하고 끔찍할지라도 그 작품들에는 레옹의 영혼 그 자체가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작품에는 이런 진정성이 훨씬 덜합니다. 그의 작품은 점차 예술이라기보다는 벽을 꾸미기 위한 장식에 가까워졌습니다. 중년부터 말년까지 그가 그린 작품에서는 다소 성급한 솜씨로 완성한 나무, 열린 문, 고요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마치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자기 내면을 표현한 것처럼요.
생활이 안정된 이후 레옹에게는 별 이야깃거리가 없습니다. 그는 중견 화가이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평온하게 살았습니다. 후기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별개로, 레옹에게는 행복을 얻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레옹의 평화로운 삶 자체가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이었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레옹은 1946년 예순다섯 살의 나이로 브뤼셀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불면도, 예술적 열망도 이미 레옹을 떠난 지 오래였습니다. 대신 그의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옹은 그 어느 조건에도 해당하지 않는 화가입니다. 미술사적으로 그는 상징주의 내지 표현주의 화가로 분류되고, 에드바르 뭉크·제임스 앙소르·오딜롱 르동 등과 결이 비슷한 작품을 그린다는 평가를 받기는 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어떤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고 혼자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낸 예술적 외톨이였습니다. 삶이 별로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의 작품과 삶 모두, 뒤로 갈수록 얘깃거리가 적어집니다. 레옹의 작품 80%가량은 미술관이 아니라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서, 전시를 열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도 불리한 점입니다.

그런데도 레옹은 그 모든 악조건을 뚫고 재조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는 20세기 초 벨기에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유화의 창시자 얀 반 에이크, 페테르 파울 루벤스, 제임스 앙소르 등 쟁쟁한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벨기에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2020년대 들어서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영국 로열아카데미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지난 3월에는 데이비드 즈워너 뉴욕지점에서 전시가 열리는 등 예술적·상업적인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건 레옹의 젊은 시절 작품이 그만큼 강렬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감각적이고 가슴에 사무치는 방황의 풍경. 젊은 날, 불안에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 절대적 고독이 레옹의 작품에 담겨있습니다. 작품을 보며 사람들은 깨닫습니다. 내 고통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가장 힘들었던 날들, 가장 아팠던 밤들이 레옹의 가장 빛나는 예술을 만들어냈다고.

삶이란 무언가를 위한 도구가 아니기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은 공허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픔을 겪고 있다면 어쩌면 그 고통은 가장 아름다운 창조의 순간을 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고통이 아름다움으로 변하고, 마침내 평온해질 날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레옹의 작품과 삶처럼.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Leon Spilliaert Hardback Catalogue(RCA 도록), Leon Spilliaert: From the Depths of the Soul(Anne Adriaens-Pannier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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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