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에 오스카를 거머쥔 케이트 블란쳇이 특별출연하고, 한국 제작진이 기획하고 연출한 작품에 일본 간판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여기에 글로벌 기업과 자본이 협업해 'K팝'을 내세운 애니메이션까지 선보였다. OST를 부른 건 한국을 대표하는 걸그룹 트와이스, 더빙에는 배우 이병헌, 안효섭이 나섰다. 공개와 동시에 넷플릭스 정상에 오른 '오징어게임' 시즌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일본판을 공개한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이야기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K콘텐츠가 단출한 수출품을 넘어 '글로벌 협업'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이 단순한 콘텐츠 수출국을 넘어 공동 제작자로서도 존재감을 확장하고 있는 것. '오징어게임3'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로벌 합작을 했다는 점에서 협업 사례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 프로듀서, 연출자와 작가, 제작사 등 한국의 제작진이 기획한 작품이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내놓는 사례는 이미 흔해진 협업 사례다. 한국 제작사와 인력의 아이디어, 노하우와 글로벌 플랫폼의 자본이 합해지면서 발휘된 시너지는 한국의 콘텐츠가 빠른 시간 내에 세계적으로 알려진 원동력으로 꼽힌다. 특히 '오징어게임'이 역대 넷플릭스 흥행 성적을 새로 쓰면서 한국 콘텐츠와 한국 스태프의 경쟁력이 입증됐다는 평이다.
최근엔 여기서 더 나아가 한국의 이야기, 한국의 기획력에 해외 배우가 출연하는 콘텐츠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판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한국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해 한국에서 기획해서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드라마다. 제작진은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아닌 원작 웹소설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와 감성에 맞게 재구성한 오리지널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연출은 tvN '비밀의 숲',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안길호 감독이 맡았지만, 각본은 '1리터의 눈물' 오오시마 사토시 작가가 맡고, 코시바 후우카, 사토 타케루 등 일본 대표 배우들이 주연으로 캐스팅됐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미국 리메이크작인 '부고니아(Bugonia)' 제작에는 CJ ENM과 더불어 아리 애스터 감독의 스튜디오 '스퀘어 페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과 계속해서 협업해오고 있는 '엘리먼트 픽처스'가 공동으로 참여했으며, 투자 배급은 유니버설 픽처스 산하의 '포커스 피처스'가 맡게 된다.
넷플릭스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킨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지만, 연출자인 매기 강 감독을 비롯해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제작진은 다수가 한국계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있는 K팝 걸그룹 멤버들이 무대 밖에서는 악마를 사냥한다는 내용의 하이브리드 액션 뮤지컬 애니메이션인데, K팝과 한국의 전통문화를 접목했다. 미국의 자본과 한국 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획의 구조적 합작이라는 평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손자영 책임 프로듀서도 지난 26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한국에서 기획하고 한국 제작진이 현지에서 작업을 한다면 저변이 더 넓혀지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저희에게도 큰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국내 콘텐츠 시장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기획도 수출하는 시대가 됐다"며 "K콘텐츠의 세계화, 세계의 K콘텐츠화가 실제로 이뤄지고 있지만, 기획 역량만 소비되고 지적재산권 등 과실이 모두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 시장의 회복, 한국 콘텐츠 자체 수출의 확대 등도 동시에 이뤄져야 하지 않겠나"라고 조언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