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급 K팝 아이돌이 등장했다. 능숙한 칼군무 퍼포먼스에 보컬·랩 실력까지 출중한데, 심지어는 검·신칼을 꺼내 들고 귀신도 때려잡는다. K팝의 특징을 살린 공감대 형성은 물론 판타지까지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공개된 지난 20일 이후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관련 글이 쏟아졌다. 이 작품은 루미·미라·조이로 구성된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화려한 무대 뒤 세상을 지키는 숨은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신예처럼 등장한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가 악마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쟁 구도가 펼쳐진다.
특히 주목받은 건 촘촘하게 채워진 한국적 요소다. 주인공을 K팝 아이돌로 설정했다는 점 외에도 한의원·목욕탕, 남산서울타워, 저승사자, 김밥, 라면, 순대, 호떡, 지하철 등 한국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배경과 소품이 매 장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내부는 임산부 배려석까지 묘사돼 있고, 역명은 뚝섬유원지(현재 자양역)를 떠올리게 하는 '섬 유원지역'으로 표현했다. 길거리 장면에서는 인생네컷 부스가 보여 반가움을 자아냈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한국에서 과거 쓰였던 곡도·신칼·사인검 등을 기반으로 했다. 무기에는 각자 노리개가 달려있고, 작호도가 떠오르는 호랑이와 까치도 등장한다. 여기에 황금 혼문, 악령, 귀마 등 오컬트적 요소가 더해졌다. 작품은 미국(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것임에도 놀라운 고증과 높은 완성도로 호평을 얻고 있다.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건 등장인물이다. 헌트릭스뿐만 아니라 사자 보이즈도 팬덤이 형성됐을 정도다. K팝이라는 장르가 지닌 글로벌 화력, 그리고 실제 K팝 음반으로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의 OST가 큰 역할을 했다. 곡 프로듀싱에는 블랙핑크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해온 테디가 참여, 더블랙레이블 프로듀서들이 대거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 강인하고 단단한 헌트릭스의 색깔을 잘 구현해냈다는 평가가 따른다. 청량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가는 사자 보이즈의 곡에 빠졌다는 시청자들도 많다.
아이돌급 인기는 수치로 드러나고 있다. 넷플릭스 코리아는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스페셜 뮤직비디오를 공개했는데, 헌트릭스의 '하우 잇츠 던(HOW IT'S DONE)'은 조회수 50만회, 사자 보이즈의 '소다 팝(SODA POP)'은 165만회를 넘었다. 타 영상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다른 곡의 뮤직비디오 및 안무 영상도 기다리고 있다거나, 관련 굿즈를 제작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미국, 대만, 태국, 필리핀, 싱가포르, 호주, 일본, 프랑스, 독일, 말레이시아, 멕시코, 브라질 등에서 1위를 찍었다. 이는 K팝에 대한 대중적 호응이 높은 국가와 비슷한 흐름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원이 공개한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음악을 '대중적 인기'로 인식한 나라 1위는 필리핀(79.3%)이었고, 이어 말레이시아(68.1%), 대만(66.2%), 베트남(66.1%), 멕시코(63.8%), 인도네시아(60.3%), 태국(59.5%), 인도(57.8%), 홍콩(57%), 일본(55.4%), 브라질(52.4%), 미국(49.5%) 순이었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 비결과 관련해 "콘텐츠는 비즈니스 수익 모델을 세울 때 코어 팬덤이 있어야 한다"면서 "이 작품은 K팝 팬덤이 코어 팬덤이 된다는 전제가 있고, K팝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2030 세대가 관심을 갖고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장르인 퇴마·오컬트를 포함하고 있다. 쌍끌이 흥행 조합"이라고 분석했다.
장르 보편성과 맞물려 스토리적으로는 차별성을 적절히 가져간 것도 큰 장점이라고 짚었다. 김 평론가는 "내용이 단순하고 명확한 가운데, 기존 오컬트물과는 달리 동양적이다. 영미권 오컬트는 선과 악이 분명한데, 사자 보이즈의 진우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 등 'K-신파'를 가미해 차별화했다. 영미권에는 없는 코드다. 이 점에서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영미권에서도 골고루 반응을 얻고 있다. 전개 속도도 빠르다. 젊은 층이 소비할 것을 염두에 두고 편집과 구성을 짠 것 같다"고 봤다.
음악적으로는 K팝에 대한 연출자의 이해도가 높다는 점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기 강 감독은 한국계 창작진으로, 어린 시절 국내 미디어를 가까이서 접해 우리 문화를 익숙하게 잘 알고 그만큼 관심도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단순히 작품만을 위한 음악이 아닌, 온전한 K팝이 구현되길 바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국 음악 레이블과 협업했고, 그룹 방탄소년단(BTS)·트와이스 등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이들도 합류하며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K팝의 정체성'을 제대로 살려냈다.

감독은 "영어로 한국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독특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문화적으로 온전히 한국적인 영화가 미국 회사에 의해서 제작이 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가진 강력한 힘을 나타내주는 증거"라면서 "한국 문화가 얼마나 많이 발전해 왔는지, 한국이 문화적으로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라고 'K-컬처'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