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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펜을 든 원조 백수저…"글 쓰면서 더 나은 셰프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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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지연의 讀說

작가이자 셰프
에드워드 리 인터뷰

셰프가 된 문학도
글과 요리, 인생의 두 열정
주방에서 전달 못한 철학
글로 쓸 때 온전히 전해

좋은 음식은 좋은 책
이야기가 담긴 요리는
사랑·감동 느끼게 해줘
그 자체로 예술과 같죠

이민자 식당 찾아 삼만리
2년간 미국 전역 돌며
소박한 음식 탐험기 남겨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비빔인간 이균' 없었을 것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에드워드 리(한국명 이균) 셰프는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민자의 삶과 그리움을 서사로 깊은 인상을 남기며 준우승을 차지하면서다. 그는 흑백요리사가 방영되기 훨씬 이전부터 미국에선 ‘백수저 중 백수저’로 통했다. 서바이벌 요리 프로그램 아이언 셰프의 우승자이자 백악관 국빈 만찬 셰프로 실력을 검증받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리는 셰프이면서 작가다. 미국 뉴욕대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스모크 & 피클스>, <버번 랜드> 등 세 권의 책을 썼다. 이 중 2018년 그가 두 번째로 발표한 회고록 <버터밀크 그래피티>가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저자 에드워드 리 셰프가 미국 전역을 돌며 이민자 식당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그가 사랑하는 미국 남부의 식재료 ‘버터밀크’와 방황하던 10대 시절에 몰두한 ‘그래피티’를 합쳐 지은 제목처럼, 이질적인 이민자들이 요리로 미국이라는 문화의 용광로 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은 ‘요식업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레시피가 실려 있어 ‘요리사가 요리책을 쓴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문학성 짙은 산문집이다. 사적인 일화나 추억이 마치 연작소설처럼 펼쳐진다.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꿨다는 그는 요리 못지않게 글과 문학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에드워드 리 셰프와 글쓰기, 책에 관한 이야기를 서면으로 나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2년간 미국 전역을 돌며 캄보디아 페루 모로코 스웨덴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차려내는 음식을 맛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획 의도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면 항상 두 끼 정도는 식사하려고 해요. 두 종류의 식당에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우선 저는 매우 고급스럽고 창의적인, 셰프 중심의 음식을 즐깁니다. 가족이 운영하는 (수수한 아주머니의 식당처럼) 소박하고 단순한 식당도 좋아하고요. 이런 식당은 종종 가족이 자기 민족의 음식을 직접 요리합니다. 미국에선 보통 이민자들이 운영하죠. 상을 받거나 화려한 이력을 지닌 셰프에 관한 기사나 책은 많지만, 이런 소박한 가족 중심의 식당에 관한 이야기는 많지 않더라고요. 이민자 가족을 만나고 그들의 요리를 조명하고 싶었어요. 얼핏 단순해 보여도, 그 음식은 유명 셰프의 음식만큼이나 맛있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리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왜 그런 요리를 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떤지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쓴 세 권의 책이 모두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책을 쓰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 인생엔 두 가지 열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글쓰기고, 다른 하나는 요리죠. 제 이야기와 생각을 나의 문장 리듬과 언어로 전하고 싶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 사실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외로운 직업이라 두려웠죠.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재밌게 일하고 싶어 셰프를 선택했어요. 그래도 글쓰기를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어요. 젊은 요리사였을 때도 글을 쓰며 혼자 실력을 갈고닦았죠. 처음 책을 출판할 기회가 생겼을 때 요리책이긴 하지만, 단편소설집처럼 느껴지기를 바랐어요. 당초 출판사에선 대필 작가를 제안하더라고요. ‘요리사가 과연 글을 쓸 수 있겠냐’는 우려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가 직접 쓰게 해달라고 간청했어요. 샘플 원고가 통했죠. 출판사로선 모험을 한 셈인데, 결과적으로 책이 잘 팔렸고 성공했고요.”

▷<버터밀크 그래피티>를 쓸 땐 첫 번째 책과 어떤 차별점을 뒀나요.

“2013년 발표한 <스모크 & 피클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긴 정통 요리책이지만, <버터밀크 그래피티>는 그 반대죠. 재미있는 레시피가 담긴 수필집이에요. <버터밀크 그래피티>의 초점은 이야기와 제 말에 있습니다.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음식 사진을 넣고 싶지 않았어요.”(각 장 끝에 레시피가 나오지만 사진은 실려 있지 않다.)

▷이 책은 매우 사적인 회고록입니다. 학교에선 피자·햄버거·샌드위치를 먹고 집에 와서는 게장과 김치찌개를 먹으며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 일본인 전 여자친구와의 연애담과 현재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셰프가 된 자식을 끝내 인정하지 않은 아버지의 임종까지…. 개인적인 일을 고백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요.

“글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조용한 방에 저와 노트북뿐이었기에 더 진실하게 쓸 수 있었죠. 하지만 그 글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보는 건 두려웠어요. 사실 글을 쓸 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별도로 시간을 내는 것이었어요. 저에겐 운영해야 하는 식당이 있고, 가족도 있으니까요. 여행을 가고, 조사를 하고, 레시피를 만들고 나서야 밤늦게 글을 쓸 수 있었죠. 보통 밤 11시에 시작해 새벽 4시까지 글을 쓰곤 했어요. 힘들어도 1주일에 세 번 정도는 그런 생활을 했죠. 모든 이야기를 쓰는 데 1년 넘게 걸렸습니다.”

▷평소에 일기를 쓴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의 경험도 기록 중이라고요. 글쓰기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일기엔 메모를 하거나, 이야기를 쓰거나, 먹은 음식과 만난 사람을 기록하고 있어요. 스케치를 하기도 하고요.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는 거죠. 글쓰기는 요리할 때 사용하지 않는 뇌의 일부를 사용합니다. 요리할 때는 오직 재료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 메시지가 전달되기 어려울 때도 있죠.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제 열정과 철학, 삶을 주방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아이디어를 종이에 풀어내다 보면 더 나은 셰프가 된다고 느껴요. 반대로 마음 깊이 소중한 음식을 만들다 보면 더 나은 작가가 되기도 하죠. 두 가지 직업 모두 저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것 같습니다.”

▷뉴욕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부모님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다고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었고, 좋은 작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독자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영문학을 전공했죠. 저는 항상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릴 땐 제가 선택한 전공을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작은 한인 커뮤니티에서도 다른 자녀들은 착한 아들딸이었고, 치과의사 같은 직업을 많이 택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작가, 또 이후엔 셰프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거기서도 외부인 같은 느낌을 받았죠. 어린 시절엔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에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결국 그런 경험이 작가로서, 셰프로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이야기’입니다. 음식에 대해 말할 때 맛 자체만 중요하다고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반면 당신은 그 뒤의 이야기가 음식에서 본질이라고 말하는데요. “훌륭한 음식이란 결국 귀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찾는 여정의 출발점”이라고요.

“재료는 자연이 만들어내지만, 요리는 인간이 만들기 때문이죠. 최고의 음식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합니다. 이때 음식은 예술이 되죠. 단순히 입에 넣어 씹는 무언가를 뛰어넘는 거예요. 좋은 음식은 저에게 사랑, 질투, 자부심, 기쁨,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좋은 책처럼요. 우리가 어떤 책을 좋아하면, 저자에 대해 알고 싶어지잖아요. 좋은 음식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당신에게 이야기란 무엇입니까.

“이야기는 우리가 인생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모든 것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고 믿어요. 세상은 매우 혼란스럽지만 내가 생각을 글로 정리할 때 세상이 이해되기 시작하고, 나 자신도 더 잘 알게 됩니다.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는 단순한 사건들의 집합일 뿐이죠. 이야기는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책은 “미국 음식의 정의를 찾기 위한 사적인 여정의 기록”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음식의 정의를 찾았나요.

“아니요. 하나의 정의를 찾진 못했어요. 그것이 제 여정의 아름다움이자 좌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답을 절대 찾을 수 없기에 탐험을 이어갈 수 있죠. 그게 인생의 과제이기도 하고요. 지구에서 보내는 시간을 이런 일에 쓰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미국 음식이 이 땅에 와 자신들의 맛과 문화, 이야기를 더하는 이민자들 덕분에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이 미국을 특별하게 만들죠. 이는 우리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미국 음식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절대 갖지 못할 것임을 의미하기도 하죠.”

▷<버터밀크 그래피티>를 쓰지 않았다면 ‘흑백요리사’에서 보여준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이 책을 쓰고 나서 바뀐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좀 더 사려 깊어졌습니다. 모든 재료가 이야기 속 단어 하나하나와 같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더 인내심 있고 차분해졌죠. 제 한계를 받아들이게 됐고요. 좋은 작가는 평생 아름다운 책을 쓰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렇다면 왜 셰프라고 평생 자신만의 요리를 찾아 헤매지 못할까요. 셰프이자 작가로서의 제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척 큰 영감이 되죠.”

설지연 기자

※에드워드 리의 추천도서와 인터뷰 전문은 아르떼 매거진 7월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신문 - 2025.06.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