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엄마 가방’으로 불리며 한물간 브랜드로 전락했던 미국 명품 브랜드 코치(Coach)가 최근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화려하게 부활하며 반전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명품 시장이 전반적으로 주춤한 점을 감안하면 보기 드문 사례다. Z세대를 겨냥한 브랜드 리포지셔닝 전략과 제품 혁신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26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코치 모회사 태피스트리는 올해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 증가한 16억달러(약 2조1720억원)를 기록했다. 그룹 사상 최대 실적이다. 같은 기간 LVMH(-3%), 케링그룹(-14%) 등 글로벌 주요 명품업체들 실적이 뒷걸음질친 것과 상반된 흐름이다.
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코치가 매출 증가를 견인했다. 코치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늘어난 13억달러(약 1조7650원)를 기록하며 그룹 전체 매출의 약 80%를 차지했다. 그룹 내 케이트 스페이드 매출(2억4500만달러)이 13% 빠지고, 스튜어트 와이츠먼(4600만달러)이 18% 줄어든 데 따른 매출 감소분을 코치가 대부분 상쇄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소비 여력이 많은 중장년층이 아닌 Z세대와 밀레니얼 등 젊은층 사이에서 수요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태피스트리 CEO인 조안 크레보세랏은 코치가 한 분기 동안 약 80만명의 새로운 소비자를 유치했으며 이중 60%는 젊은 층이었다고 언급했다.

코치는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대표적인 중저가 브랜드다. 불황 장기화 속 합리적 가격의 매스티지(대중적 명품) 브랜드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초고가 명품은 고가 제품 소비 감소 여파로 주춤한 흐름이지만, 중저가 명품 브랜드는 이런 추세를 상대적으로 덜 타는 분위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코치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며 "소비자들이 세계 경기의 둔화 속에서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도 품질과 가치가 괜찮은 제품을 추구하고 있다"며 "'중간급 명품' 브랜드들이 초호화 명품이나 저가 패스트패션 브랜드들보다 지금의 경제 불확실성을 더 잘 헤쳐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대표 사례로 495달러(67만원)짜리 태비백을 꼽으며 “이 백은 디올이나 샤넬의 비슷한 숄더백보다 훨씬 저렴하다"고 소개했다. LVMH의 경우 제작비가 약 60달러(8만원)인 디올백을 2800달러(380만원)에 판매한다며 "실제 가치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한 명품 전문가의 평가를 인용했다. 지난해 이탈리아 검찰 수사 결과 LVMH는 중국 하청업체에 디올백 제작대금으로 53유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 제품 태비백을 포함한 ‘엠파이어 캐리올’, ‘브루클린 백’ 등이 변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70년대 유행하던 디자인의 코치 태비백은 과감한 캔디 색상과 플러시 실루엣으로 리뉴얼 돼 세계적 레트로(복고) 열풍을 만족시키면서도, 최신 트렌드를 잘 반영한 디자인으로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특히 패딩 재질 소재를 사용해 베개처럼 푹신하다는 뜻을 가진 '필로우 태비백'은 인스타그래머블한 백으로 알려지며 Z세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뒤이어 출시된 '퀼팅 태비백' 또한 많은 Z세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요 컬렉션을 액세서리와 매칭한 마케팅 전략도 일명 ‘백꾸’(가방 꾸미기)를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 유행을 제대로 만족시켰다. 가방 자체의 실용성에 ‘재미’라는 요소를 더해 MZ세대의 소비 욕구를 자극하면서 인기 브랜드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Z세대에 핫한 인물을 브랜드 앰배서더로 선정하면서 유튜브 채널에는 코치 관련 영상 중 '마이 퍼스트 럭셔리 백'의 제목으로 올라오는 숏폼이 많아졌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생애 첫 명품 백으로 코치 가방을 사는 게 유행이 됐다. 국내외 Z세대들로부터 '힙한 브랜드' '트렌디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더해진 것이다. 국내에서도 메가 패션 유튜버가 소개하는 코치 관련 영상들이 10만뷰를 거뜬히 넘는다.
국내 패션 업계 관계자는 “코치의 가격대는 샤넬·루이비통 등 하이엔드 명품보다 낮지만 디자인 트렌디함이나 브랜드 감성 측면에서 Z세대에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며 “가격 프리미엄과 희소성에 의존하는 기존 명품 브랜드들과 달리 더 실용적이고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방식으로 Z세대를 사로잡았다. 장인정신 기반의 퀄리티는 유지하면서도 ‘손에 닿는 거리의 럭셔리’를 지향한 것이 시장에 잘 먹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