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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의 금융화, 경계가 필요하다[마은성의 경제 돋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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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보증은 장기적 성격의 금융 수단, 남용하면 부작용 커
단기적 경기 대응위한 정책금융 신중해야



전통적으로 재정은 정부가 세출을 늘리고 세금을 감면하며 이전지출을 집행해 시장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런 방식은 경기 안정화와 소득 재분배 기능을 중심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팬데믹, 고물가, 경기침체가 연이어 닥치면서 정부는 기존의 ‘현금형’ 수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대출·보증·투자 같은 금융형 수단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여신 잔액은 2018년 1250조원에서 2023년 1868조원으로 5년 만에 50% 가까이 늘었다. 이른바 ‘재정의 금융화’가 단기적 대응을 넘어 구조적 변화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세 가지 경고 신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생산성과의 연계성이 부족한 자금 배분 문제이다. 위기 대응을 위해 편성된 저금리 정책자금이 성장 잠재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부문에도 광범위하게 전달되면서 자금 운용 효율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폐업 직전의 한계 자영업자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된 사례에서는 일부 자금이 연체로 전환되어 개인 신용도 하락이나 금융권 부담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자금이 생산성보다는 정치적·사회적 필요에 따라 배분될 경우 자원의 비효율적 배치가 고착화돼 장기적인 성장 여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시장 규율의 약화 가능성과 도덕적 유인의 문제이다.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잔액은 2019년 100조원에서 2023년 150조원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보증 사고율도 함께 상승했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추진한 ‘소상공인 장기 부채 탕감’과 같은 일회성 구제 조치는 채무자의 상환 인식에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반복적인 채무 경감 조치나 보증 연장 제도가 제도화되는 경우 수혜자들은 이를 구조적 지원으로 인식하고 스스로의 채무 책임을 경시할 우려가 있다. 만약 위험이 충분히 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장기화한다면 일부 민간 경제주체는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한 과도한 차입이나 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유인은 제도 전반의 건전성에 부담을 줄 수 있으며 그로 인한 비용은 결국 공공 재정의 악화 또는 미래세대 납세자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셋째, 통화정책 효과의 제약 가능성이다. 2023년 금리인상기에도 정책금융기관의 대출금리는 2%대에 머문 반면, 민간 중소기업이 부담한 금리는 5%를 상회했다. 이러한 금리 차이는 이른바 ‘그림자 금리’를 형성하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정이 시장 전반에 전달되는 데 일정한 제약을 줄 수 있다. 정부가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가 지속되면 민간의 투자나 소비 결정이 왜곡될 수 있으며 통화당국의 정책 신호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점차 약해질 우려가 있다.

정책금융은 위기 시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일시적 충격을 흡수하는 수단으로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경기 대응 수단을 장기계약 기반의 정책금융으로 대체하는 것은 정책의 본래 의도와 어긋날 수 있다. 대출이나 보증 같은 금융 수단은 본질적으로 장기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단기적 경기 대응의 민첩성과는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 결국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재정은 금융 수단이 아닌, 본연의 재정적 역할을 중심에 두고 운용돼야 한다.


마은성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오늘의 신문 - 2025.06.3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