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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곡선으로 만들어진 예술과 건축의 도시 상파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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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건축, 다양성을 품은 상파울루

코판, 상파울루 미술관, 유리의 집 등
이민자 출신 건축가들의 향연

상파울루 비엔날레, 아트페어도 열리는
남미 예술계의 중심

상파울루의 얼굴들

도시의 프로필을 무엇으로 그릴 수 있을까.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에펠탑,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으로 뉴욕, 파리, 런던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도시의 역사와 미적 기준이 건축물을 통해 상징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상파울루라는 도시를 부감 촬영한다면 어떨까.

“직선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곡선은 신의 창조물이다.”

우선 헤푸블리카 지구의 주상 복합 빌딩인 코판(COPAN)이 보인다. 건축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1907~2012)의 작품이다. 그는 브라질의 건축 정체성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라면 전혀 다른 새 수도 짓기였던 브라질리아 건설(1956~1960, 브라질리아 대성당, 국회의사당, 이타마라티궁 등)을 들 수 있지만 이외에 리우데자네이루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도시 니테로이 해안 절벽에 U.F.O.처럼 지은 니테로이 현대미술관도 인상적이다. 상파울루의 코판은 자유롭고 관능적인 곡선을 사랑하는 니에메예르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한 점 조각품 같다. 건물 옆면이 굽이치는 파도처럼 리듬감으로 가득 차 있다.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변으로 이름난 리우 출신인 니에메예르는 일찍이 건축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시각적 감각과 철학적 관점이 형성되었다. 철근 콘크리트에 내재 된 미학적 가능성에 주목했던 니에메예르의 또 다른 작품은 상파울루의 센트럴파크라 일컫는 이비라푸에라(Ibirapuera)에 1950년대에 조성된 건축 단지다. 다양한 기하학적 실험들이 펼쳐지는 상파울루 대학 현대미술관(MAC-USP), 오카(Oca)미술관 이외에도 주목해야 할 곳이 시실로 마타라초 파빌리온이다.

남미 예술계의 중심 미술전 상파울루 비엔날레

이탈리아계 브라질 기업가 시실로 마타라초(1898~1977)가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모델 삼아 1951년 설립한 상파울루 비엔날레가 바로 여기서 열린다. 비엔날레의 초기 목표는 브라질에 현대미술(주로 서유럽과 미국의)을 도입하고, 역으로 브라질 예술가들을 널리 알려 상파울루 자체를 국제 예술 센터로 만드는 것이었다. 비서구권을 대표하는 비엔날레로서 이른바 제3세계 미술을 널리 끌어안고 서구와 비서구를 연결하는 구실을 했기에 1960년대 김환기, 이응노, 박서보 등이 출품 작가로 진출하기도 했다.

비엔날레 외에 상파울루 아트페어(SP-Arte)도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2025년인 올해 제21회였다. 2005년 컬렉터 페르난다 페이토사의 기획으로 시작된 아트페어로, 남미를 대표하는 국제 미술 행사로 성장했다. 라틴 아메리카 예술 전반의 흐름을 살필 수 있는 통로다. 최근엔 세르지우 카마르고, 알란 웨버, 루카스 아루다, 에드가르 칼렐 등의 작품이 주목받았다.



붉은 두 기둥이 받치고 선 탈권위적 공간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브라질 출신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영향으로 라틴 아메리카 예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는 상파울루 미술관(MASP)의 예술감독이기도 한데 이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가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리나 보 바르지(1914~1992)다. 건축 공부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치고 밀라노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기 시작한 그녀는 지오 폰티와 함께 잡지에 글을 썼고 2차 대전 중 도무스(DOMUS)지 부국장을 지냈다. 이탈리아 공산당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나치에 맞서는 레지스탕스 활동에도 가담했다. 전후 로마로 돌아온 그녀는 예술평론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피에트로 마리아 바르지와 결혼하고 브라질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20세기 중반의 현실에서 이민자에 여성 건축가라는 사실은 건축계에서 활동하기에 핸디캡이었음에도 그가 건축의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주장하며 브라질의 자생적 건축 확립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평생에 걸친 독창적인 건축 일러스트와 재기 넘치는 메모로도 유명하다. 핀란드 아르텍의 알바 알토처럼 리나 보 바르지도 건축 설계뿐만 아니라 가구와 그릇, 보석 등을 두루 만든 토탈 디자이너였고 브라질에서도 잡지 <아비타트(Habitat)>를 창간해 주거 공간에 대한 철학을 꾸준히 개진해 나갔다.

“박물관은 역사의 잔재가 보관되는 먼지 쌓인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시된 물체는 대중에게 가깝고, 위계가 없으며, 동시대성과 관련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은 브라질 최초의 현대미술관으로 1947년 피에트로 마리아 바르지가 창립 이사로 운영을 맡게 되면서 리나가 설계를 담당해 건설되었다. 박물관의 대중화를 목표로 했는데 유리와 콘크리트를 베이스로 하여 고급스러운 마감재가 없는 거친 표면의 건축물을 만들었고, 좌우에 붉은 기둥을 세워 머리에서 만나게 하고 아래쪽을 공중으로 띄워 건물 아래의 보행로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광장이 되도록 설계했다(유명 서커스 천막이 이곳에 설치되기도 했다).

내부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건물 2층의 구조다. 어떤 가벽도 세우지 않고 작품을 콘크리트 큐브가 받치고 있는 투명 이젤로 가져감으로써 관람객에게 관람 순서를 강요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작품들이 마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듯 보인다. 작품을 설명하는 패널도 작품 뒷면에 부착해 이러한 의도를 극대화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도 이런 전시 방식이 전격 채택된 바 있다. 아드리아노 페드로사의 영향이다.



열린 공간과 사유

리나 보 바르지가 직접 설계한 자택인 ‘유리의 집’은 당시로서는 미개발 지역이었던 모룽비 지역에 ‘자연에 온몸을 내맡긴 듯한’ 형태로 지어졌다. 거대한 고무나무를 품기 위해 중정을 두었고 푸른 기둥을 높게 세워 가파른 언덕 지형에 어우러지게 했다. 통창에 야생이 가득 담긴다. 이탈리아 건축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브라질에서 받은 문화적 영향으로 자재, 색감, 구조 등에서 풍부한 표현이 가미되었다. 리나가 남긴 6천 점이 넘는 드로잉이 이곳을 본부로 하는 리나 보 바르지 재단 아카이브에 보관되어 있다. 한편, 오래된 술통 공장을 개조해 시민들을 위한 문화 교육, 예술 공연 기관으로 탈바꿈시킨 '세스키 퐁페이아(SESC Pompeia)'도 그의 생태주의적 관심을 반영한 도시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브라질인을 구성하는 것

위에 말한 오스카르 니에메예르는 독일계 이민자 출신이고 리나 보 바르지는 이탈리아계 이민자다. 얼마 전 브라질 언론에 발표된 바로 브라질인의 게놈 조사 결과 (이렇게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2025년의 브라질인은 60퍼센트의 유럽인, 27퍼센트의 아프리카인, 13퍼센트의 원주민 유전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유전자적 다양성을 지닌 인류가 브라질인이라고 전한다(그리고 우리는 세계 최대 동성애 커뮤니티의 장이 상파울루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선사시대 동굴벽화 이래 브라질 예술이 소위 서구 예술사의 범위 내로 편입된 것은 포르투갈 정복자들의 식민 지배 시절 유럽의 문화가 현지에서 뿌리내리면서 팽창한 17세기와 18세기의 바로크 예술이라 해야 할 것이다. 브라질 북동부의 살바도르를 중심으로 한 바이아 지방과 헤시피를 중심으로 한 페르낭부쿠 지방이 그 중심축이었는데 이곳은 그 시절 아프리카와의 노예무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이후 바로크 거장들은 골드러시로 풍요롭고 교양 있는 지역 사회가 형성된 남부 내륙의 미나스제라이스에서 독창성을 꽃피웠다.



토착화와 해방의 여정

이후 19세기엔 프랑스 예술 사절단과의 교류로 미술 아카데미가 설립되고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가 유입되었고 20세기가 되자 모더니스트들이 등장해 구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게 되면서 브라질 현대미술사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1922년의 이른바 '현대미술주간' 축제다. 조형 예술 전시, 강연, 시 낭독회, 음악회가 포함된 급진적인 이벤트였고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 마리우 지 안드라지, 아니타 말파치, 타르실라 두 아마라우, 에밀리아노 지 카발칸치 등이 주축이 되었다. 이들은 유럽의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을 브라질 대중에게 소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브라질 현실에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 예술적 기반으로 활용, 변용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소위 '식인주의 선언문' 같은 토착 민속을 활용한 문화인류학적 고찰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이 왜 중요한가 하면, 토착화 예술에 대한 천착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브라질 예술의 큰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인데, 가령 최근 주목받는 작가인 자이더 에스벨은 “모든 원주민 미술 전시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모든 범죄를 폭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고 바이아 출신 작가 야쿠나 투샤(Yakuña Tuxá)는 현대 브라질에서 토착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반영하는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1960~1970년대엔 정치 미술, 개념 미술 등이 모더니즘 미술 경향의 주류를 형성했다. 1964년의 쿠데타 이후 예술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현상학적 접근법을 채택한 엘리우 오이치시카, 리지아 파페, 리지아 클라크 등이 주축이 되었다. 특히 1968년 군사 정부가 고문을 합법화한 이후, 브라질 예술계는 상당히 급진적인 행동과 사건들로 점철되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인권 탄압과 기억의 서사를 통한 인간 존엄성의 증명 등을 다룬 영화가 월터 살리스(Walter Salles)의 <아임 스틸 히어(Ainda Estou Aqui)>이며 이번 브라질 상파울루 한국영화제에서 상영된 <서울의 봄>과 몸을 기대게 되었다. ‘우리’를 지켜내는 방법, 자유의 확보에 대한 고민이 여기 브라질에도 여전하다.

▶▶[관련 리뷰] 상파울루 한복판에서 본 K무비에 '따봉'을 외치다



상파울루=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

오늘의 신문 - 2025.06.25(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