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희찬 스튜디오 히치 대표는 “자기 집이 넓고, 인테리어를 잘 해두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는 공공공간의 수준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도시건축학교에서 ‘서펜타인(Serpentine) 25년의 기록’이라는 주제 발표를 한 박 대표를 만났다. 서울과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실무를 쌓은 영국왕립건축사(RIBA)다. 2018년 서울에서 스튜디오 히치를 설립했다. 2020년 한국건축가협회상, 2022년 문화체육부 장관이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서울시에서 연 ‘서펜타인 파빌리온의 순간들’이란 전시의 큐레이팅을 맡았다. 지금까지 총 23개가 제작된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전시였다.
박 대표는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공공공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영국 런던 켄싱턴 가든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 앞 잔디밭에 세워지는 임시 구조물이다. 2000년부터 매년 여름 3개월간 새로운 건축가에 의해 새롭게 설치된다. 박 대표는 “서펜타인 갤러리는 비영리단체로 입장료를 받지 않고, 기부 등을 통해 운영돼 누구나 입장할 수 있고,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공공간”이라며 “갤러리 정원에 놓인 파빌리온 역시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영국에 완공작(건축물)이 없는, 재능있는 전 세계 건축가를 초대해 설계를 맡긴다. 매년 뛰어난 건축가는 새로운 방식의 공공공간을 제시한다. 박 대표는 “파빌리온은 창조적이고, 세계적인 건축 이벤트"라며 "건축과 예술이 결합한 공공장소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도시의 공공 건축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매스스터디스의 조민석 건축가가 한국인 최초로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했다. 지난해 조 건축가가 설계한 파빌리온의 제목은 ‘군도의 여백’이다. 다섯 개로 쪼갠 공간을 흩어진 섬(군도)처럼 배치했고 가운데는 비워 두었다. 박 대표는 ”비웠기 때문에 채울 수 있는 한옥의 마당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며 ”중앙 공간은 비어있기 때문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장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한국에서도 국제공모 등을 통해 공공공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도시공간은 공공공간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재건축 아파트의 단지 내 녹지와 공용공간도 진정한 의미에서 공공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며 “시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공공간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네의 시민이 함께 사용하는 작은 공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는 “그나마 존재하는 동네의 작은 시민공원도 매력적이지 않은 운동기구로 채워져 있다”며 “도시 안의 소규모 공원과 공개공지가 품질 높은 시민의 도시공간이 되게 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공공인프라의 변신이 공공공간 부족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서울처럼 공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대도시에서는 그나마 시민이 함께 이용하는 도시의 인프라가 공공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하철의 공간들, 지하철 환승시설, 도시의 버스와 환승시설, KTX 역사와 객차의 객실, 한강 공원의 편의시설과 도시 환경 등 시민이 함께 쓰고 함께 만나는 모든 공간이 영감을 주는 도시의 공공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잘 조성된 공공공간으로 2009년 처음 만들어졌던 '한강 나들목 프로젝트'들을 꼽았다. 박 대표는 “이전까지만 해도 어두운 콘크리트 동굴을 통해 한강공원에 진입해야 했었다"며 "신혜원(로컬디자인), 이소진(아뜰리에리옹), 김찬중(시스템랩) 등 당시 젊은 건축가가 성산, 잠원지구 나들목 등을 바꿨다”고 했다. “이후 한강공원 나들목을 창의적인 공공공간으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