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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생해서 변호사 될 바엔…" 10년 만에 '초유의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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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사·행정사 다 느는데 변호사만 '역주행'
LEET 지원자 10년 만에 감소

시험 5번 탈락 땐 영구 탈락
취업난·'탈락 리스크'에 흔들리는 로스쿨
“로스쿨 '고시학원화'”

전문가들 구조 개편 한목소리



직장에 다니며 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인 권혁준씨(30)는 올해 진학을 포기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권씨는 “입학 준비에만 최소 1년, 반수를 고려하면 2년 가까이 걸린다”며 “하위권 로스쿨에 진학해도 취업이 어렵고, 입학 후에도 변호사시험에 5년 안에 합격하지 못하면 자격을 잃는 구조여서 비용 대비 효율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고소득 전문직’의 상징이었던 변호사의 인기가 10년 만에 시들고 있다. 변호사시험의 높은 난이도와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 등 복합적인 부담이 커지면서, 변호사의 매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무사, 노무사 등 다른 전문자격시험은 비용 대비 효율성과 안정적인 진입 장벽을 앞세워 역대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 당시의 교육 취지에서 멀어져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변호사 인기 식었나 ...지원자 '역주행'

12일 로스쿨협의회에 따르면 2026학년도 LEET 접수자는 1만905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1만9400명)보다 343명(1.7%) 줄어든 수치다. 2015학년도 이후 10년간 지속된 접수자 증가 추세가 꺾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응시자도 동반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LEET 미응시자는 1881명으로 5년 전인 2020년(870명)보다 약 2.5배(1011명) 늘었다.

법조계에선 변호사 자격증이 더 이상 '안정적인 전문직’의 상징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진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렵게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시험에 합격해도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10대 대형 로펌의 올해 14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1744명 중 227명(13%)만이 이들 로펌에 입사했다. 여기에 검찰(90명)과 법원 재판연구원(143명) 신규 임용자를 합쳐도 ‘좋은 일자리’에 취업한 인원은 460명으로 전체 합격자의 26.4%에 불과하다.

반면 자격 취득까지의 시간과 비용이 적고 기대 수익이 비교적 안정적인 노무사, 행정사, 세무사 등 다른 자격시험은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올해 공인노무사 1차시험 지원자는 1만3521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행정사 시험 지원자도 8820명으로 제1회 시험 이후 가장 많은 수험생이 몰렸다.

세무사 시험 지원자는 올해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세무사 1차 시험 지원자는 2만2010명으로, 전년도(2만2455명)보다 소폭 감소했다. 하지만 2024년은 전년 대비 5638명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로스쿨 '변시학원' 전락...."구조개혁해야"
전문가들은 로스쿨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변호사시험 합격 여부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 현행 구조에서는 '균형잡힌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 본연의 기능이 사라지고 변호사시험 불합격 시 감수해야 할 시간과 비용 부담만 커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로스쿨 자체의 매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봉경 한국법학교수회장(서울대 로스쿨 교수)은 “변호사시험에 5번 떨어지면 자격을 영원히 잃게 되는 현행 구조에선 불합격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커 로스쿨 진학의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로스쿨에 합격하더라도 학생들은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법조인으로서의 소양을 기르기보다 ‘시험 합격’에만 매달리게 됐고, 결국 로스쿨은 고시학원처럼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민법·형법 등 시험과목 외에는 수업 수강 자체가 외면받는 분위기라는게 최근 로스쿨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라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이런 환경에선 학생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다양한 역량을 갖춘 법조인을 양성하자는 로스쿨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변호사시험 자격시험화 등을 포함한 강도 높은 구조 개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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