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서울 강남의 한 백화점 샤넬 매장에선 오랜만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고 웨이팅 수요가 몰렸다. 근래 들어 샤넬 매장에서 긴 대기가 발생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해당 매장에 샤넬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제품으로 알려진 '가브리엘 백팩'이 입고됐다는 소식이 명품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되면서 사람들이 몰렸다.
제니가 사복 패션으로 즐겨매는 아이템으로 알려진 이 가방은 정가가 833만원(스몰 사이즈 기준)에 달하지만, 리셀시장에서 웃돈만 100만원가량 붙는다. 대표제품인 클래식 백도 정가보다 리셀가가 400만~500만원 정도 떨어진 상황에서 샤넬 브랜드에선 유일하게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제품이다. 매장에서는 워낙 수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명품 마니아들 사이에선 ‘유니콘 백’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이처럼 최근 명품시장에서 ‘오픈런’(매장 개점 전부터 줄을 서는 현상)은 특정 프리미엄 제품에 국한하는 양상이다. 단순히 브랜드 이름 값이나 전체 카테고리 인기가 아니라, 희소성과 리셀 프리미엄 여부가 구매 수요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명품족 사이에서도 구매했다가 되팔아도 손해를 안 본다고 알려진 하이엔드급 브랜드인 에르메스나 롤렉스 등에서도 최근엔 대표 인기제품에만 주로 웃돈이 붙는 형편이다. 예컨대 스카프, 신발 제품이나 일부 가방은 리셀가가 소비자가를 밑돈다. 반대로 버킨이나 켈리 등 인기 제품군에서도 공급이 제한된 제품은 웃돈이 수억원대까지 치솟는 상황이다.
매장가 4780만원짜리 에르메스 포부르 버킨백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9년 한정 출시돼 일부 에르메스 VIP들만 구매할 수 있었다고 알려진 이 제품은 2022년 한 글로벌 명품 리셀 플랫폼에서 15만8000유로(약 2억4700만원)에 거래돼 화제가 됐다. 최근에는 프리미엄이 더 뛰어 호가가 4억원대 수준이다.
한 구매대행 업자는 “몇년 전만해도 에르메스 제품은 구하기만 하면 무조건 웃돈이 붙어 돈을 번다고 했지만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리셀업자들도 신제품을 샀다가 되파는 과정에서 제 값을 못받아 손해를 보는 일이 늘었다. 매장 앞에 진을 치고 오픈런에 나서던 대행업자들이 싹 사라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근 LVMH, 케링 등 주요 럭셔리 그룹들이 실적 발표에서 초고가·희소성 전략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샤넬은 최근 가격을 인상한 것은 물론 수량 제한 등 구매 장벽을 유지하며 희소성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에르메스도 일부 제품에 대해 일정 금액 이상의 구매 이력을 조건으로 건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 오픈런은 '명품 전체의 열기'라기보다 '프리미엄 타깃 소비'로 재편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오픈런 현상은 더더욱 소수 품목에 집중되고, 일반 제품은 차분한 소비 흐름이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