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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피아노 트리오가 펼쳐낸 멘델스존과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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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박마린의 유럽 클래식 산책

6월 3일 파리 루이비통 오디토리움
정상급 솔리스트 3인이 함께한 멘델스존과 브람스
파리의 초여름을 재촉한 실내악 향연

피아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바이올린, 다니엘 로자코비치
첼로, 고티에 카퓌송

6월의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위치한 불로뉴 숲의 싱그러운 초록이 더없이 촉촉한 빛과 향을 발하며 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조각작품을 떠올리는 건축 디자인으로 유명한 현대 건축의 아이콘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건물은 2014년 개관 이후 현대 미술에 특화된 전시 공간으로 21세기 파리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루이비통 재단 건물 내에는 또 다른 숨은 명소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을 위한 은밀한 공간, 오디토리움이다. 공연 성격에 따라 320명부터 1000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루이비통 오디토리움에서는 클래식, 재즈 현대음악 장르의 엄선된 음악 프로그램이 시즌 기획으로 열리고 있다.

유자 왕, 크리스티안 짐머만 등의 클래식 연주자와 아마드 자말, 브래드 멜다우 등의 재즈 연주자들이 루이비통 오디토리움의 무대를 거쳐갔다. 엄선된 이들 기성 아티스트 외에도, 뉴 제너레이션 피아노 시리즈(New Generation Piano)와 고티에 카퓌송이 이끄는 첼로 마스터클래스 시리즈(Classe d’Excellence de Violoncelle)라는 이름의 기획으로 유망한 신인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5월 섬세한 비르투오조로 주옥같은 연주를 들려준 17세의 러시아 출신 신예 피아니스트 알렉산드라 도브간의 뉴 제너레이션 피아노 리사이틀에 이어, 루이비통 시즌 막바지 공연은 피아노 트리오 구성의 실내악으로 막을 내렸다. 2019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에 빛나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스웨덴 출신의 24세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 접근성 높은 클래식 프로젝트로 분주한 프랑스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이 한 무대에서 만났다.



한참 주가를 높이고 있는 두 젊은 아티스트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중견 첼리스트. 트리오 레퍼토리 중 단연코 인기곡으로 손꼽히는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1번과 브람스 트리오 1번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불러일으킨 관심은 시즌 예매가 오픈되기가 무섭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이번 실내악 무대는 바쁜 솔로 일정 중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 같은 만남이었으리라. 세 아티스트가 함께 모여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가지지는 못한 듯, 공연 전 큰 흐름에 포커스 하여 맞춰본 후 무대에 오른 것으로 느껴졌다. 세 연주자는 일단 각자 자기만의 고유한 사운드에 집중하며 연주를 시작했고, 음악의 흐름을 느끼며 점차 서로의 호흡에 주의하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에 맞게 조율해 나갔다.

첫 곡은 민첩성과 지구력을 요하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 세 명의 솔리스트가 각자의 색채를 그대로 여과 없이 드러내며 연주를 펼쳤고, 이로 인해 섬세한 디테일보다는 다소 격렬한 충돌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점이 오히려 강렬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고티에 카퓌송은 루이비통 오디토리움에서 진행 중인 첼로 마스터클래스를 이끄는 아티스트로서, 후배들을 지도해온 경험이 이번 무대에서도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연륜 있는 아티스트답게 무대 위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며, 도입부의 업 비트를 확신 있게 이끌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과거 ‘아르헤리치와 친구들’ 페스티벌에서 르노 카퓌송, 아르헤리치와 함께했던 어린 고티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중심을 잡아주는 어엿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그를 지켜봤던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켰다.

초반에는 배경을 만들어주는 듯 조심스럽게 접근했던 캉토로프는 그가 진정 실내악 연주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도록 했다. 그는 주요 선율이 피아노로 옮겨 가는 부분에서 두 현악기 사이를 뚫고 힘 있게 부각되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특히 2악장의 감미로운 선율에서 캉토로프는 멘델스존이 피아노에 부여한 서정미를 감미로운 터치로 그려내었다.



세 연주자가 최고의 앙상블을 발휘한 부분은 3악장 스케르초 부분이었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되 멘델스존 특유의 날렵한 가벼움을 유지하며 같은 템포로 함께 치닫던 그들의 합은 단연코 돋보였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의 존재감이 비로소 전면에 등장했다. 다니엘 로자코비치는 다이렉트하고 명료한 프레이징으로, 두 선배 연주자에 이어 주요 메시지 전달자의 바통을 이어갔다.

전체 공연은 약 한 시간 반 동안 매우 빠르고 밀도 높게 전개되었다. 생중계를 위한 구성상 예정된 인터미션은 생략되었는데, 이는 전체적인 음악적 흐름 유지와 연주자들과 감상자들의 집중력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선택으로 느껴졌다.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 1번은 체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요구하다 보니, 각자의 개성 있는 음색이 더해져야 곡의 진정한 맛이 살아나는 작품이다. 브람스 작품 세계를 각별히 애정하는 캉토로프는 기대에 부응하며 진가를 발휘했고, 로자코비치의 바이올린도 더욱 깊이 있고 자유롭게 울려 퍼졌다. 세 연주자의 소리가 비로소 하나로 녹아들면서, 젊은 브람스의 열정과 패기를 함께 표현했다.

열린 피아노 뚜껑 사이로 쏟아지는 강렬한 피아노 사운드 속에서도 두 현악 주자는 기세에 밀리지 않고 조화를 이루었다. 캉토로프는 피아노가 물러나야 할 순간에는 뒤에서 서포트 하다가도, 선율을 리드해야 할 때는 주저 없이 전면에 나서며 음악의 방향을 능숙하게 조율했다.

연주 후 이어진 짧은 인터뷰에서, 세 연주자는 트리오 연주의 의미에 대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풀어냈다. 각자의 파트를 독립적으로 준비해 오더라도 함께 모여 연주하게 되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서프라이즈’를 마주하게 된다는 점과 바로 그 점이 실내악이 묘미라는 점을 이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실내악 연주는 단순한 합주 그 이상으로, 해석의 유연함과 음악적 대화의 가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들은 악보의 어느 지점에서 어떤 파트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라 각자의 해석을 조정해 가는 과정이 트리오 연주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개성과 배경을 가진 세 사람이 하나의 음악적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 바로 그것이 실내악이 지닌 진정한 의미이며, 그 여정 속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것’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로자코비치는 어린 시절 실내악을 처음 접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피아티고르스키, 루빈슈타인, 하이페츠가 함께 연주한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를 들었던 경험을 언급했다. 놀랍게도 이날의 프로그램이 바로 그때 감명 깊게 들었던 곡들이라는 사실에, 그는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클래식 음악에 처음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피아노 트리오 작품을 묻는 말에는, 세 연주자 모두 망설임 없이 멘델스존과 브람스를 꼽았다. 접근성 면에서도, 서정성과 다이내믹이 공존하는 이 두 작곡가의 트리오야말로 실내악의 매력을 가장 적절히 보여주는 대표작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무대에 동행한 두 현악기의 사운드 또한 관객을 매료하며 관심을 집중시켰다. 고티에 카퓌송이 연주하는 첼로는 1701년 산 마테오 고프릴러 'Ambassadeur'로, 두텁고 강렬한 소리를 자랑하는 악기이며, 로자코비치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은 중저음의 중후함과 우아한 고음을 자랑하는 1713년 산 스트라디바리우스 'ex-Sancy'라는 악기로, LVMH – Moët Hennessy Louis Vuitton 그룹에서 후원하고 있다.

파리=박마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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