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달 15일 사기·문서위조·범죄수익은닉 등 혐의로 기소된 A씨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2022년 3월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직후, 자신을 급여대행업체 팀장이라고 소개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았다. 조직원은 A씨에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게 하고, 신분증 사본과 비상연락망을 요구하는 등 정상적인 입사 절차를 위장했다 .
이후 A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현금수거 지시를 받았다. 자신도 모르는 이름의 직원 지시를 언급하며 피해자들에게서 현금을 받아왔다. A씨는 2022년 4월 피해자 8명으로부터 9차례에 걸쳐 총 1억6900만원을 수령한 뒤,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100만원 단위로 나눠 송금하는 수법으로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장 명의의 공문서 등을 출력해 피해자에게 건네기도 했다.
1심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은 범행 완성에 필수적인 역할로 죄책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이 범죄임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A씨 혐의를 인정했다. A씨가 면접 없이 채용됐고, 업체의 조직·업무·실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점, 타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현금을 송금한 점, 당시 47세로 10년 이상 사회생활을 했던 점도 고의 판단에 영향을 줬다.
재판부는 “A씨는 비상적이거나 이례적인 절차로 거액의 현금수거업무를 맡게 됐다”며 “보이스피싱 등 범행에 가담하는 것임을 알았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반드시 보이스피싱 범행의 실체와 전모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야만 각각의 범죄의 공동정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원심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환송했다.
황동진 기자 radh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