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의 예술 브랜드
2017년 출범한 ‘베이징 갤러리 위크(Gallery Weekend Beijing)’는 베이징에 위치한 국내외 갤러리, 비영리 예술기관 간의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점차 국제적인 예술 플랫폼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베이징 대표 관광지인 798예술구와 751예술구, 고층빌딩이 밀집한 CBD 상업지구, 그리고 차오창디(草场地) 예술지구의 갤러리들을 한데 묶어 문화예술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베이징 갤러리 위크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인 독일 출신 예술가 토마스 엘러(Thomas Eller)는 “베이징에는 수많은 예술가, 갤러리, 그리고 네트워크 거점이 밀집해 있어 이곳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베를린 갤러리 위크’ 모델을 참고하여, 먼저 소규모 갤러리들과 협력하고 베이징의 대표 예술구들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전시 동선을 설계함으로써, 제1회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갤러리 위크 진행 기간, 12개국 32개 도시에서 온 121곳의 화랑이 참여한 ‘제8회 베이징 컨템포러리 아트 페어(Beijing Contemporary Art Fair/北京当代艺术博览会)’도 함께 베이징 농업전람관에서 막을 올렸다. 이처럼 갤러리와 소속 예술가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갤러리 위크는 예술이 생산하는 실제 환경을 선보이고, 이를 작품의 수집과 전시, 판매로 이어지도록 만들고 있다. 넓은 엑스포 전시장에서는 각 갤러리의 대표 작품들을 관람하고, 이에 따라 생긴 호기심은 관람객들을 자연스레 야외로 이끌어 직접 미술관을 찾아보도록 만든다.

798예술구에서 시작하는 예술 산책
올해 5월 23일부터 6월 1일까지 열린 제9회 베이징 갤러리 위크에는 올해는 베이징 지역 기반의 갤러리 30곳과 비영리 예술기관 11곳이 참여했고, 50여 종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특히, 기존 참여 기관인 798예술구 내 대형 미술관들은 본 행사 일정이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높은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전시를 선보이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먼저, 한국인 관장이 이끄는 중국 국영 미술관인 798CUBE에서는 예술·과학·기술 비엔날레 <징후|시야 (SYMPTOMATICA|HORIZON)>(2024.1.11.~4.30.)로 2025년의 서막을 장대하게 열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선정된 김윤철 작가의 전시가 열려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UCCA 울렌스 현대미술센터에서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아니카 이(Anicka Yi)의 첫 중국 개인전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2025.3.22.~6.15.)가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리움미술관과 중국 UCCA가 공동 기획한 순회 전으로, 이미 2024년 9월 5일부터 12월 29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우연히 UCCA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한국 여성 예술가의 시선과 아이디어 덕분에 괜스레 모든 작품에 한층 더 애정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인근 블록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 베이징에서는 미디어아트 공모전 ‘VH AWARD’ 수상작 전시가 열리고 있어, 798예술구 곳곳에서 예년보다 더 자주 들려오는 한국인 관람객들의 목소리가 더욱 반갑게 다가온다.


상업지구 속 예술의 향기
이번 ‘베이징 갤러리 위크’에서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전시회는 미국 추상표현주의 예술가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과 캐나다 출신 추상 회화 작가 메간 루니(Megan Rooney,1985-)의 <자연으로부터의 회화(Painting from Nature)>(2025.4.19.~10.19.) 이다. 이 전시가 열리고 있는 에스파스 루이비통 베이징(Espace Louis Vuitton Beijing)은 상업 중심구인 궈마오 CBD(国贸 Centeral Business District)의 중심부에 둥지를 틀었다.
베이징 외에도 서울, 도쿄, 오사카, 베네치아, 뮌헨에 있는 이 루이비통의 문화예술 플랫폼은 자체 소장품 전시는 물론 전 세계 예술기관 및 재단과의 협업을 통해 수준 높은 전시를 선보이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조안 미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된 전시는 두 예술가의 작업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연관성을 드러낸다. 조안 미첼의 역동적인 붓질과 메간 루니가 회화 속에 직접 남긴 신체의 흔적을 세심히 들여다보며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 간의 교차점을 발견해보기도 했다.

CBD 상업지구에는 이번 갤러리 위크에 참여한 타이캉 미술관(泰康美术馆)도 있다. 타이캉보험그룹 산하의 비영리 민간미술관인 이곳에서는 <미완의 시간: 중국 현대미술 1980s x 1990s(未完成的时间:中国当代艺术1980s x 1990s)>(2025.3.30.~6.15.) 전시를 통해 중국 미술의 격동기와 급진적인 흐름을 조명했다. 중국과 해외의 다양한 작품들을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직접 마주하며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예술 애호가에게 더없이 소중한 순간들이다.

이런저런 전시를 둘러보며, 이번 갤러리 위크가 주목한 '기술과 생명, 자연과의 관계', 그리고 '여성의 시선'이라는 주제를 통해 일상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을 다시금 그려보게 되었다. 독일 철학자 요제프 피퍼(Josef Pieper)가 "축제를 기념한다는 것은 일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긍정하며 살아내는 일"이라고 말한 것처럼, 다양한 전시를 통해 동시대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베이징 갤러리 위크는 단지 전시장을 방문하는 행위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계를 조금 더 기꺼이 긍정하고자 하는 하나의 축제였는지도 모른다.
배혜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