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간 안보 협력을 근간으로 중국·러시아와도 실용 외교를 펴야 한다고 강조해왔는데, 이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시험할 첫 무대가 열린 셈이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미국은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 명의로 이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내놓으면서도, 익명의 백악관 당국자 명의로 낸 논평을 통해서는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를 언급했다. 동맹국인 한국의 대통령 당선 메시지에 중국을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새 정부를 향해 대놓고 ‘중국 편에 서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달 열린 G7 재무장관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중국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놨다. 이들은 중국이 대만 인근 해협에서 군사 훈련을 하는 데 대해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무력이나 강압 등 일방적 행동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이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때 “대만 애들이 어떻게 되든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그냥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이번 대선 때도 자신의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된 데 대해 “제가 틀린 말을 했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강성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이재명 정부=친중·반미’ 인식을 이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실용외교 노선의 취지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한미 동맹이 협력의 근간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은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며 “이런 노력이 중국과의 관계에 부정적인 건 아니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별개로 중국과의 관계는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을 대상으로 다음달 8일까지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한다고 밝힌 만큼 두 정상 간의 만남을 계기로 관세 협상을 타결하기 위한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
김태형 숭실대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관세 협상을 풀어가기 위한 기회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 문제와 연계해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를 지렛대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하는 데 한정하지 않고 중국의 대만 위협 등 아태 지역 전반으로 확대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 외교가 인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과 방위비 분담 문제를 묶어서 ‘패키지’로 묶어 얘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피해갈 수 없고, 조선·원전 등 우리나라가 강점이 있는 분야를 내세워 유연하게 협상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재영/이현일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