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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정부, 실용적 시장주의 뒷받침할 구체적 중·단기 방안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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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인터뷰 - 조환익 유니슨 회장

장기 비전만큼 단기 정책 중요
소비쿠폰으로 자영업 살리는 일 시급
부동산 규제도 대폭 완화할 필요

AI 전환으로 기업 경쟁력 높여야
全산업에 AI 얼마나 빨리 접목하느냐가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 좌우할 것

일본과 연합하면 '경제세력' 가능
한국 생산기술, 日 소부장 강해
美·中 사이 협상력 높일 수 있어

만난 사람 = 박준동 논설위원

“역대 정부는 국민에게 잘 알려진 고유한 경제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를 내세우지만 이것이 경제 정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큰 실행 방안과 미세 매뉴얼이 뒤따르지 않으면 직전 두 정부처럼 실패할 수 있습니다.” 조환익 유니슨 회장은 ‘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과거 정부의 경제 정책을 되짚어보는 것으로 답변을 시작했다. 1973년부터 40년 넘게 산업·통상 정책을 다뤘으며 11년간 한국무역보험공사, KOTRA, 한국전력 등 3개 공기업 사장을 지낸 경륜이 느껴졌다. 조 회장을 박준동 논설위원이 지난 5일 경기 과천 지식정보타운 유니슨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선언했습니다.

“그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게 아직 없어요. 국민과 시장에 비전을 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큰 실행 방안과 미세 매뉴얼이죠. 박정희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노태우 정부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로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개혁 성장을 주창했고 김대중 정부는 벤처의 씨를 뿌렸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균형 성장, 이명박 정부는 철저한 기업 중심, 박근혜 정부는 신성장동력 육성으로 경제를 이끌었죠. 직전 두 정부는 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새 정부는 과거 정부를 참고해야 합니다.”

▷새 정부가 우선 취해야 할 경제 정책은 뭘까요.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초단기 대책, 단기 대책, 중기 대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초단기 대책으론 내수, 그중에서도 자영업에 돈이 돌도록 방안을 짜는 게 절실합니다. 저녁에 식당들 한번 보세요. 상당수가 텅 비어 있습니다. 재정을 풀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이나 식당 등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이 효과가 제일 클 거예요. 한 1년 돌려놓고 재정의 승수효과니 이런 거를 생각해야죠.”

▷단기와 중기 대책으론 뭐가 필요할까요.

“부동산 대책이 단기 대책이 돼야 합니다. 역대 정부에서 서울 강남 집값이 뛰면 죄었잖아요. 이래서는 건설 경기를 못 살립니다. 강남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놔둬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지역에서도 부동산과 건설 경기가 좀 살아나죠.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규제를 대폭 풀어야죠. 배고픈 건 참아도 배아픈 건 못 참는다는 정서, 이 대통령이 바꿔야 합니다. 다른 대통령은 몰라도 이 대통령은 이걸 과감히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입니다. 중기 대책은 인공지능 전환(AX)입니다. 우리가 인공지능(AI) 기초기술에서 뒤처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AI를 산업에 적용하는 것은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습니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에서 이미 증명됐습니다. 장기 대책은 기술과 산업이 너무 빨리 바뀌니 짜는 거 자체가 힘든 게 사실입니다.”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창업 1세대에서 3세대, 4세대로 넘어오면서 야성이 좀 떨어지고 있어요. 업종별로 보면 혁신을 못 해 어려워진 분야도 있죠. 정부를 등에 업은 중국 업체의 부상도 있고요. 석유화학과 철강이 대표적이죠. 정부가 파일럿 시그널(선도적 신호)을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지원할 것은 지원한다는 것을요. 석유화학과 철강은 정부가 나서서 피를 묻혀야죠. 한둘 정도는 구조조정해야 합니다. 문제는 고용 문제를 우려하는 노조의 반대인데요. 이 역시 이재명 정부가 설득하는 것이 가장 좋고 제일 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대기업으로 커가는 중견·중소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피터 팬 신드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죠. 중소기업은 어느 정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중견기업이 되면 대기업으로 커 갈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예전엔 이를 위한 산업 정책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산화 정책이죠. 국내에서 생산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정 정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을 로컬콘텐츠룰(LCR)이라고 하는데, 국제무역기구(WTO)에서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다 없애버린 겁니다. 이재명 정부에서 국산화 정책을 복원하는 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국은 미·중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요.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고 하잖아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요. 그런데 저는 다른 의미의 안미경중(眼美警中)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미국은 잘 봐야 하고, 중국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관세와 주한미군 철수 압박을 하고 있죠. 암만 봐도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바로 일본이죠. 일본과 함께하면 세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비슷한 처지입니다. 일본과 연합하면 큰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AI 전환이 서로 절실하고, 한국은 생산기술이 뛰어나고 일본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잘하니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제가 한전 사장 할 때 값싼 우리 전기를 일본에 해저 터널로 보내는 슈퍼그리드 구축 방안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꽤 깊숙하게 논의한 적도 있습니다.
조환익 유니슨 회장은…한전 최장수 CEO 역임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산업정책국장, 무역투자실장, 차관보, 차관 등을 지냈다. 한국수출보험공사(현 한국무역보험공사), KOTRA, 한국전력 사장을 거쳤다. 수보 사장 시절 조선업체를 적극 지원했으나 일부 조선업체가 파산에 내몰리면서 배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소임에 투철하고 청렴한 공공기관장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하룻밤 조사로 끝냈다.

한전 사장 시절엔 1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며 5년간 재임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기록을 갖고 있다. 풍력발전 전문기업 유니슨 회장은 2022년부터 맡고 있다. 조환익 회장은 “정부와 공기업에 있으면서 기업들 얘기를 더 듣고 어려움 해소를 위해 더 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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