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취임한 후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K-콘텐츠 업계에서도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정권에선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 해제가 이뤄질 수 있을 거란 확신에 찬 반응도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폭싹 속았수다'를 언급하며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K-콘텐츠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뿐만 아니라 취임 선서에서도 "문화가 곧 경제이고 국가경쟁력"이라며 "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문화사업 지원을 언급한 만큼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책공약집에서 'K-컬처 시장 300조 원 시대'를 개막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문화강국 실현을 위해 △국가 예산 대비 문화재정의 대폭 확대 △세계 속의 한류 추진 동력 확보 △한류 확대 기반 마련 △문화강국에 부합한 문화 외교 강화 등을 약속했다.
또 5만 석 규모 공연장을 조성하고 한류 콘텐츠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등 문화 콘텐츠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서 육성한다. 여기에 세제 지원 확대 등 국가 지원 체계를 확대하겠다고 공언했다. 콘텐츠 창작부터 제작, 글로벌 시장 진출, 유통 까지 전 단계에 걸쳐 뒷받침하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의도다.
한국의 콘텐츠는 2000년대 초반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산업적인 측면에도 여러 영향을 끼쳤다. 국내 드라마 제작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생방송 '밤샘 촬영'도 중국의 불법 시청을 막고자 동시 방영을 위한 검열을 받기 위해 사전제작을 시작하면서 바뀌었을 정도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중국 정부의 한한령이 시행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당시에 한중 동시 방영 중인 KBS 2TV '화랑'이 하루아침에 중국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한한령은 한국 제작사는 물론 배우와 가수, 연출자와 작가 등 제작진까지 중국 내 콘텐츠 제작 참여를 막는만큼, 당시 진행 중인 한중 합작 프로젝트도 모두 취소됐다.
이후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새로운 시장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엔 투자가 주춤하면서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일각에서는 한국의 제작사들이 글로벌 OTT 하도급 업체로 전락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한 제작사 대표는 "너도 나도 OTT만 바라보는 상황에서 중국 시장이 뚫리면 감사한 상황 아니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10년 가까이 냉기만 흐르던 분위기였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 지금처럼 불필요하게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를 밝히며 실용주의 외교를 예고했다. 특히 한중 관계 안정화를 내세우며,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각급별 소통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한중일 협력체제를 정례화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엔터 업계에서도 사업 회복 여부에 이목이 쏠렸다.
그동안 직접적인 중국 진출이 막히면서 대만을 통한 우회 제작이 주를 이뤘다. 특히 대만 문화부가 2019년 대만콘텐츠진흥원(Taiwan Creative Content Agency, TAICCA)을 설립한 후 CJ ENM홍콩, JTBC 제작 스튜디오인 SLL 등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한국의 유명 콘텐츠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중국어 영화, 드라마 기획,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중관계 개선을 기대하며 현지 법인도 설립하는 분위기다.
하이브는 지난 4월 2일 중국 베이징에 현지 법인인 하이브 차이나를 설립했다. 일본과 미국, 남미에 이어 4번째 해외 법인이다. 하이브 측은 소속 아티스트의 현지 활동 지원을 위해 해당 법인을 설립했다는 설명이다. 한국 국적의 가수는 중국 내 공연도 불가했던 이전의 비교해 달라진 분위기가 엿보인다.
중국 기업의 한국 엔터사 투자도 활발하다. 중국 시총 1위 기업인 텐센트의 자회사인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TME)는 최근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지분 9.38%를 인수해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총지분율 41.5%)에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TME는 SM과 중국 현지 아이돌 그룹 육성 등 전략적 협력에 나선다. TME는 SM 외에 카카오 5.95%, 카카오엔터 4.61%, YG엔터테인먼트 4.3%의 지분도 갖고 있다.
한한령이 시행됐을 당시에도 한국의 콘텐츠는 중국 내에서 인기를 모았다. 불법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통됐기 때문. 중국 내에서 넷플릭스가 정식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 만든 오리지널 '오징어게임' 시리즈와 '폭싹 속았수다'가 상품 광고에 무단으로 사용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과 교역이 활성화 되면 이런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려 해결이 가능하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온다. 콘텐츠를 정식 수출해 제 값을 받고, 과거 SBS '런닝맨', MBC '아빠!어디가', '나는 가수다' 등의 포맷을 판매했던 것과 같이 '짝퉁'이 아닌, 정식 라이센스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사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
2013년 중국에 수출된 '아빠!어디가'는 방송 뿐 아니라 극장판도 2편이 개봉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나는 가수다'는 시즌3까지 중국판으로 제작돼 광고 수입만 3000억원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MBC는 약 200억원의 수익을 나눠 가질 것으로 추측됐다.
다만 10년 전과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국내 관계자들이 중국 시장이 완전히 열리기 전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특히 중국의 콘텐츠 제작 능력이 그동안 크게 상승했고, 중국 내 자국민들의 중국 콘텐츠 선호도도 높아졌다는 점에서 "단순히 노하우 전수, 포맷 등 콘텐츠 판매 등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더불어 중국 자본에 대한 경계와 우려도 여전하다. 과거 국내 유명 배우들이 대거 소속돼 있었던 대표적인 연기자매니지먼트사인 판타지오는 중국 투자를 받은 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후 중국 자본을 정리하며 정상화됐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중국 시장이 열릴 거라는 확신은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며 "다들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 역시 "몇년째 보릿고개가 이어지면서 지금 같은 분위기엔 중국 내수 시장에 직접 진출할 수 있길 바라는 상황"이라며 "관계 개선을 통해 직접적인 제작 확대를 기대해 본다"고 털어놓았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