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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미세하게 다른데…" 법정에선 안 통해요 [오성환의 지재권 분쟁, 이기는 쪽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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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절감하려다 디자인권 침해 피소 위험
세부 외형 차이나 다른 명칭으로 방어 안돼
사전에 침해 여부 확인하고 분쟁 대비해야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남의 제품 따라 한 건 맞아요. 안 걸릴 줄 알았죠.”
“제품 모양 좀 비슷하긴 한데, 다들 이렇게 만들지 않나요?”

요즘 온라인 쇼핑몰 창업자나 중소 제조업체 대표들과 상담하다 보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법률적 관점에서 이런 생각은 꽤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제품의 외형이 주요 경쟁력인 업종에선 디자인권 침해로 소송을 당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받는 일이 실제로 자주 발생한다. “제품이 비슷해도 이름만 다르면 괜찮겠지”란 생각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의도 안 했더라도 ‘불법행위’ 성립
디자인보호법상 ‘디자인’은 단순히 모양이 아니라 “물품의 외관으로서 시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형태, 모양, 색채 또는 이들의 결합”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보고 ‘이 회사 제품이구나’ 하고 인식한다면 그 외형 자체가 법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디자인이 특허청에 등록돼 있다면 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유사한 디자인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스타트업이 고유 형태의 텀블러를 개발해 디자인 등록을 마쳤다고 가정하자. 몇 달 뒤 유사한 디자인의 텀블러가 대형 유통 플랫폼에 올라오며 이 스타트업의 매출은 급감했다. 스타트업은 유사 제품을 제조한 업체에 디자인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두 제품의 외관이 ‘수요자에게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하다’며 침해를 인정했다. 침해 업체는 전량 리콜과 손해배상은 물론, 유통 중단까지 겪으며 큰 피해를 봤다. “디자인 등록이 돼 있는지도 몰랐다”는 업체 측 주장은 법정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디자인 침해는 ‘카피 제품’이 일반화된 업종에서 많이 발생한다. 가구, 생활용품, 유아용품, 전자기기, 액세서리 등이 대표적이다. 단가 절감이나 유행 추종의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 디자인권 침해로 이어질 위험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대부분 창업자가 다음과 같은 오해를 하곤 한다.
첫째, “다른 업체도 다 이렇게 만들고 있는데요?” → 다른 침해가 존재한다고 해서 나의 침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둘째, “우리 디자인은 미세하게 다릅니다” → 디자인 침해 판단은 전체 외관의 유사성을 기준으로 하므로 세부적 차이만으로는 방어가 어렵다.
셋째, “상표도 없고 브랜드명도 다르니까 문제없죠?” → 디자인 보호는 상표와 별개의 제도다. 이름이 달라도 외형이 유사하면 디자인권 침해다.
일단 ‘침해’ 인정되면 대응 어려워
디자인 침해 문제는 사후 대응이 매우 어렵다. 이미 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해 시장에 유통한 뒤 소송이 제기되면 제품의 회수·폐기, 유통 중단, 대외 이미지 훼손 등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본인의 디자인이 침해당한 경우라면 빠른 법적 대응을 통해 시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미리 침해 여부를 확인하고, 선제적으로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제품 출시 전 △유사 디자인 검색 △침해 가능성 검토 △디자인 출원·등록 등 절차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제품 디자인의 모방 가능성이 높은 업종이라면 법적 분쟁에 대비한 준비가 반드시 요구된다.

제품을 유통만 하고, 실제 제작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택한 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디자인권 침해 책임은 유통사에도 함께 묻는 경우가 많아서다. 온라인 마켓에 입점해 있는 셀러들은 플랫폼에서 판매 자체가 중단되거나 계정 정지와 같은 강한 제재를 받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디자인권은 특허나 상표보다 비교적 등록 절차가 간단하고, 보호받는 범위도 명확하기 때문에 소송 대응에서 위력이 크다. 이 때문에 스타트업이나 1인 창업자들도 제품 출시 전에 디자인권부터 확보하는 추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한 완구 업체가 등록한 캐릭터 인형 디자인을 다른 회사가 유사하게 제작·판매한 데 대해 “전체적인 심미감에서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며 디자인권 침해를 인정했다(2019가합562220) 피고는 인형을 전량 회수당한 것은 물론 손해배상도 지급했다. 해당 온라인 쇼핑몰에선 즉시 판매 중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 판례는 디자인 침해의 판단 기준이 단순한 세부 요소 차이가 아니라 ‘소비자의 전체적인 인상’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조금 다르게 생겼다’며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사장님들 중 “혹시 우리 제품도 걸리는 거 아닌가?” “예전에 출시했던 그 디자인은 안전한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면 그 직감이 맞을 수도 있다. 빠르게 확인하고 불필요한 분쟁에 대비하시기 바란다.
오성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 ㅣ 1회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2013~2017년 특허청 심사관으로 심사, 심판, 특허법 개정 등 업무를 수행했다. KAIST 공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지식재산권법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9~2023년 법무법인 바른을 거쳐 2023년부터 동인에서 변리자이자 특허전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지적재산권법 전문 변호사로 등록돼 있으며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대한변협 대의원이다. 성균관대 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겸임 교수도 역임하고 있다.

오늘의 신문 - 2025.06.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