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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못산다는 에르메스…'2000만원' 헤드폰 내놓은 이유 [안혜원의 명품의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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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원의 명품의세계] 88회

에르메스는 왜 '오디오 시장'에 뛰어들까
헤드폰 출시에 담긴 에르메스의 브랜드 전략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프리미엄 헤드폰(사진)을 출시했다. 가격은 무려 1만5000달러, 우리 돈으로는 2000만원이 넘는다. 에르메스가 헤드폰을 출시한 것은 처음이다. 기존 패션·잡화 중심의 제품군을 기술 기반 제품군으로 외연을 넓힌 셈으로, 업계에선 명품 오디오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29일 명품 업계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이달 브랜드 역사상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전자기기 제품인 헤드폰을 공개했다. 에르메스 맞춤형 제품을 제작하는 부서 ‘아틀리에 오리종’에서 2년간 기획과 개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다. 기존 제품에 에르메스 가죽만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디오 전문 제조업체와 협력해 제작한다. 전통적 가죽 제품 제작 기술을 음향 기기와 접목시켜 완성도를 높였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디자인은 에르메스의 대표 제품 켈리 백에서 영감을 얻었다. 켈리 백을 상징하는 금속 장식과 브라운 컬러 송아지 가죽을 한 땀 한 땀 손바느질로 제작해 만들었다. 엔지니어링부터 가죽 세공까지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 수십명의 전문가 손길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다. 과감한 오버헤드 디자인이 최신 트렌드까지 살렸다는 평이다. 이 제품은 다양한 컬러로 나와 에르메스 부티크에서 한정 수량으로 판매할 예정이다.

아틀리에 오리종은 50여명의 직원들이 크리켓 배트와 디스코 볼부터 자동차 가죽 안감과 휴대용 칵테일 바까지 다양한 맞춤 제작 작품들을 선보이는 곳이다. 기존엔 고객이 주문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지만 최근엔 오디오 라인 생산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에르메스 아틀리에 오리종은 2019년 주크박스를 선보이며 사운드 제품 생산에 발을 들였다. ‘에르메스 사운드’를 창조한다는 개발 신조 아래 앞으로 헤드폰을 비롯해 큐빅 커넥티드 스피커, 래커 마호가니 DJ 테이블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장인들이 소량 생산해 한정 판매되는 만큼 일부 고객 사이에선 제품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에르메스는 이 제품을 통해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명품'이라는 콘셉트를 강조한다. 특히 고가 전자기기 소비에 익숙한 고소득 남성 고객층 중심으로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에르메스뿐 아니라 루이비통, 샤넬 등 여러 명품 브랜들이 전자기기 시장에 뛰어든 바 있다. 루이비통은 100만~200만원대 수준으로 꾸준히 이어폰 제품을 출시해왔다. 차은우, 손흥민 등이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한 루이비통 이어폰은 기능성보다는 패션 기능에 중점을 뒀다. 음악을 듣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도 액세서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랙핑크 제니가 착용한 샤넬 이어폰도 비슷하다. 18K 금으로 코팅한 케이스 등으로 주목을 받은 샤넬 이어폰의 가격은 1만4700달러(약 2031만원)다.

다만 최근 에르메스가 내놓은 제품은 경쟁 브랜드들과 달리 패션 요소보다 기능성에 브랜드 정신과 장인 정신까지 더한 점이 차별화 포인트다. 고급스러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희소성과 상징성을 중시하는 에르메스 고유의 철학이 반영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업계는 에르메스가 이번 제품을 계기로 오디오를 비롯한 다양한 럭셔리 테크 액세서리 라인업을 확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량 생산보다는 장인정신에 기반한 한정 컬렉션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서 전통 브랜드들이 전자기기, 웨어러블 디바이스, 홈테크 시장 등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현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업계는 소비자들이 '소유하는 명품'이 아닌 '경험하는 명품'을 원하는 경향이 커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에 담긴 예술적 가치를 소유가 아닌 일상 경험으로 체득하려는 사람에게는 수천만원대 헤드폰도 문화적 오브제가 된다”며 “오디오 수집가는 물론 하이엔드 소비자층이나 예술품 애호가까지 소수의 소비자층들 사이에선 소유욕을 자극하는 제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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