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인적분할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을 완전히 분리한다. 상이한 성격의 두 사업이 충돌하며 발생하는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하고 각자의 상장사로 분할시켜 기업가치를 온전히 재평가받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다음 달 대선에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뒤흔들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가능성을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2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CDMO 사업을 영위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존속법인으로 두고 자회사 관리와 신규투자 사업을 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신설하는 인적분할 결정을 공시했다.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을 100% 승계한다.
이는 2021년 단행된 SK텔레콤의 SK스퀘어 인적분할과 유사한 구조다. 당시 SK텔레콤은 두 회사로 쪼개져 통신사업을 영위하는 SK텔레콤이 존속법인으로 남고, 신설법인인 SK스퀘어는 비통신사업·중간지주회사로서 SK텔레콤이 갖고 있었던 자회사들을 넘겨 받아 거느렸다.
인적분할이 계획대로 완료되면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00% 자회사로 종속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상장사 삼성에피스홀딩스로 시장에서 평가받게 된다. 이론적으로 100% 자회사는 모회사 가치에 그대로 반영돼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2개 분할 회사의 가치 합산액이 하나의 회사만 있을 때보다 더 커질 수 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주들은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주식을 삼성바이오로직스 보유 지분만큼 그대로 나눠받기 때문에 삼성에피스홀딩스 주주 구성에도 변함이 없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분할 결정에는 다른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무엇보다 대선 이후 정치권의 '삼성생명법' 입법 드라이브를 대비한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의 주식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도록 하는 법이다. 삼성생명법 통과시 삼성생명은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정리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선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발의해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다음 달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해 정권을 거머쥔다면 삼성생명법 입법 논의는 본격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삼성그룹 입장에선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취약해진다.

한 기업지배구조 전문 변호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 주가가 오를수록 이재용 회장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쉬워진다"며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주력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주 특성상 시장에 기대감을 줘서 주가를 충분히 띄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발표에 앞선 전날 여의도 증권가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적분할 소문이 돌자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7.1% 급등한 채 마감했다. 이날은 정규장 종료 시점 기준 1.8% 하락했다.
송은경/박종관 기자 nor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