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세에 사망한 구스타프 말러는 생전 손녀를 보지 못했다. 마리나는 구스타프 말러의 딸인 조각가 안나 말러를 어머니로 뒀다. 아버지는 지휘자였다. 정작 마리나가 어릴 때는 할아버지의 음악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마리나는 “할아버지의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한 덕분에 오히려 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 대신 철학, 시각예술 등을 공부하는 데 젊은 시절을 쏟았다. 커서 들은 할아버지의 음악은 강렬한 경험을 남겼다.
“말러의 음악을 들었을 때 악기들이 몸속에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어요. 그 이후로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 음악과 사람들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기 시작했지요. 어떤 음악은 단순히 슬픔 같은 감정만 떠올리게 하는 게 아니라 듣는 이를 끌어안아 주기도 해요. 말러의 음악이 그랬어요. 들을 때면 모든 감정이 드러나면서 고통에서 벗어나는 듯한 해방감을 느껴요.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힘이 있는 거죠. 사람들은 말러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이 시대를 거슬러 점점 더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그는 “말러의 음악엔 개인의 내면을 직접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말러 음악을 가장 먼저 인정한 나라가 일본이었어요. 오스트리아보다 일렀죠. 음악에는 경계가 없어요. 개인의 내면에 와닿을 수 있는 음악은 그래서 보편적이에요.” 동양과의 인연을 이야기하던 그는 어머니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말러가 중국 한시에 기반을 두고 ‘대지의 노래’를 쓴 것처럼 어머니도 중국 속담을 자주 인용하거나 고비 사막에 관해 말씀하곤 했어요.”

미완성으로 남은 교향곡 10번의 해석에 관해서는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곡은 1960년 작곡가 데릭 쿡이 해석한 버전이 유명하다.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이자 마리나의 할머니인 알마도 이 버전을 지지했다. “악보는 모두 공개돼 있잖아요. 누구나 무엇이 쓰여 있는지 알 수 있어요. 해석은 자유죠. 할아버지가 그 곡을 완성하기 전에 돌아가신 게 슬픈 일이에요.” 내조에 충실하길 바란 구스타프 말러의 요구 때문에 작곡가인 알마가 한동안 작곡하지 못한 일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축제에서 가장 감명 깊게 들은 곡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여러 작품을 공평하게 대하고 싶다”며 선택을 피했다. 그 대신 오늘날의 세계와 더 맞닿아 있다고 느낀 곡으로 교향곡 6번을 꼽았다. 이 곡엔 ‘비극적’이란 제목이 붙어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엔 여전히 죽음과 살육이, 폭력과 불확실성이 많아요. 미래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죠. 5년 전 코로나19 유행으로 축제를 열지 못했는데, 지금이 오히려 더 좋은 때 같아요. 긍정적 영향력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니까요.”

마리나의 지지 속에 이번 축제에선 작곡가 서배스천 블랙이 말러 교향곡 4번의 실내악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휘자 존 워너와 뉴 유로피언 앙상블이 연주를 맡았다. 한국인 바리톤 박주성도 말러의 가곡을 부르며 즐길 거리를 늘렸다. 마리나는 “실내악으로 편성할 수 있다면 말러의 음악을 작은 장소에서 더 많이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연장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에게도 유튜브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말러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이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