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두 사람 합의처럼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매수인이 문제없이 책임지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매수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게 된 임차인이 매도인 상대로 보증금 7억원을 청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발생은 상가건물이나 토지 매매의 경우에도 가능하지만, 실제 사고는 임대차보증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주거용 건물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주거용 건물을 전제로 설명코자 한다.
관련법리 설명을 위해서, 임대차계약의 대항력 여부에 따라 임차인이 개인인 경우와 법인인 경우로 나눌 필요가 있다(물론, 예외적으로 법인인 경우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인정될 여지는 있다).
★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대항력 등) ① 임대차는 그 등기(登記)가 없는 경우에도 임차인(賃借人)이 주택의 인도(引渡)와 주민등록을 마친 때에는 그 다음 날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이 경우 전입신고를 한 때에 주민등록이 된 것으로 본다.
②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하여 저소득층 무주택자에게 주거생활 안정을 목적으로 전세임대주택을 지원하는 법인이 주택을 임차한 후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그 법인이 선정한 입주자가 그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쳤을 때에는 제1항을 준용한다. 이 경우 대항력이 인정되는 법인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③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른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법인이 소속 직원의 주거용으로 주택을 임차한 후 그 법인이 선정한 직원이 해당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쳤을 때에는 제1항을 준용한다. 임대차가 끝나기 전에 그 직원이 변경된 경우에는 그 법인이 선정한 새로운 직원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친 다음 날부터 제삼자에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
④ 임차주택의 양수인(讓受人)(그 밖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를 포함한다)은 임대인(賃貸人)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
먼저, 대항력이 있는 개인 임차인의 경우이다.
주임법 제3조는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에 대해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고, 판례해석상 임대인지위 승계의 의미는 법률상 당연승계이면서, 중첩적 아닌 면책적 승계로 해석된다.
★ 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35616 판결[임대차보증금반환]
☞ 임차주택이 양수도된 후 임차인이 기존 임대인(양도인)을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반환청구소송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 및 제2항에 의하면, 임차인이 주택의 양수인에 대하여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인 이상 양수인에게 임대인으로서의 지위가 당연히 승계된다 할 것이고, 그 주택에 대하여 임차인에 우선하는 다른 권리자가 있다고 하여 양수인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의 승계에 임차인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 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35616 판결[임대차보증금반환]
☞ 임차주택이 양수도된 후 임차인이 기존 임대인(양도인)을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반환청구소송에서 중첩적 승계라는 원고 주장 배척
주택의 임차인이 제3자에 대한 대항력을 갖춘 후 임차주택의 소유권이 양도되어 그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채무도 부동산의 소유권과 결합하여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므로 양도인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나 보증금반환 채무는 소멸한다.
★ 대법원 1989. 10. 24. 선고 88다카13172 판결[부당이득금]
☞ 원피고 공유 중 임대차계약체결되고 원피고 지분에 따라 보증금을 나누어 받았지만, 원피고간 경매 공유물분할판결에 의해 피고 지분을 원고가 취득한 다음 임차인에게 보증금전액을 반환한 것을 계기로 피고에게 당초 피고가 수령한 보증금액수 상당을 부당이득이라고 하며 반환청구한 사안
원심은 원고와 피고가 원판시 이 사건 부동산을 원고가 23분의10 피고가 23분의13의 지분비율로 공유하면서 1984.4.30. 소외 박00에게 위 부동산 중 주택을 전세보증금 7,000,000원에 채권적 전세방식으로 임대하고 이때 수령한 전세보증금을 위 공유지분비율에 따라 원고가 금 3,043,478원을 피고가 금 3,956,521원을 각 나누어 가진 사실, 피고가 공유물분할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위 부동산을 경매에 부쳐 그 대금을 지분비율에 따라 배당하라는 판결을 선고받았으며 위 판결이 확정된 사실 및 위 판결에 따른 경매분할을 위한 임의경매절차에서 원고가 1986.11.20. 위 부동산을 경락받아 1987.2.17. 그 앞으로 소유된 이전등기까지 마친 사실, 위 박00은 1984.4.30.경 원고 및 피고로부터 위 주택을 임차한 후 위 주택을 인도받아 위 주택에 거주하여 왔으며 1985.2.28.에는 주민등록상의 전입신고까지 마침으로써 위 주택에 관하여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대항력을 갖추게 된 사실을 인정한 다음 주택의 임차인이 재3자에 대하여 대항력을 구비한 후에 임대주택의 소유권이 양도된 경우에는 그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게 되는 것으로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도 주택의 소유권과 결합하여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며 이에 따라 양도인의 임차보증금반환채무는 소멸하는 것이라 볼 것이니, 원고가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피고의 23분의13 지분소유권을 취득함으로서 피고의 위 박00에 대한 위 지분 상당의 금 3,956,521원의 임대보증금반환채무는 그 지분소유권과 일체로 원고에게 이전되고, 그에 따라 피고의 위 박00에 대한 임대보증금반환채무는 소멸하였다 할 것이고, 따라서 원고가 위 박00에게 당초 피고가 수령하였던 임대보증금 3,956,521원을 포함한 임대보증금 전액을 반환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자기의무의 이행에 불과하고 그로서 피고가 같은 금액상당의 반환채무를 면함으로써 법률상 원인없이 같은 금액 상당의 이득을 얻고, 원고가 그로 인하여 같은 금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원심의 위 사실인정과 판단은 정당하고 거기에 소론과 같은 부당이득 등에 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없다.
그렇다면, 대항력이 인정되는 주거용 건물 매매는 임대차보증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만 정산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임차인 보호 차원에서 임차인이 임차건물의 양도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64615 판결[임대차보증금]
☞ 피고에서 소외인 앞으로 건물이 이전등기된 후 경매로 처분되자, 임대차계약 당사자인 피고를 상대로 임차인이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한 사안
대항력 있는 주택임대차에 있어 기간만료나 당사자의 합의 등으로 임대차가 종료된 경우에도 주택임대차보호법 제4조 제2항에 의하여 임차인은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의제되므로 그러한 상태에서 임차목적물인 부동산이 양도되는 경우에는 같은 법 제3조 제2항에 의하여 양수인에게 임대차가 종료된 상태에서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가 당연히 승계되고,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하는 경우에는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도 부동산의 소유권과 결합하여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므로 양도인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나 보증금 반환채무는 소멸하는 것이지만, 임차인의 보호를 위한 임대차보호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임차인이 임대인의 지위승계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임차인이 임차주택의 양도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봄이 상당하고, 그와 같은 경우에는 양도인의 임차인에 대한 보증금 반환채무는 소멸하지 않는다.
★ 대법원 1998. 9. 2. 자 98마100 결정
임대차계약에 있어 임대인의 지위의 양도는 임대인의 의무의 이전을 수반하는 것이지만 임대인의 의무는 임대인이 누구인가에 의하여 이행방법이 특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고, 목적물의 소유자의 지위에서 거의 완전히 이행할 수 있으며,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아도 신 소유자에게 그 의무의 승계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임차인에게 훨씬 유리할 수도 있으므로 임대인과 신 소유자와의 계약만으로써 그 지위의 양도를 할 수 있다 할 것이나, 이 경우에 임차인이 원하지 아니하면 임대차의 승계를 임차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스스로 임대차를 종료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공평의 원칙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임차인이 곧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을 면할 수 있고, 임대인과의 임대차관계도 해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임차인의 이의제기가 가능한 기간은 “임차인이 임차주택의 양도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라고 하여 불명확하고, 더구나 양도사실에 대한 임차인의 인지시점에 대해서는 임대인에게 입증책임이 있어, 매도인(임대인)으로서는 장기간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런 우려를 고려하면 매매사실을 미리 임차인에게 고지하여 매수인과 임차인간에 정식으로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이전등기 이후부터 매도인은 임대차보증금반환책임에서 면제된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임차인에게 동의는커녕 매매사실에 대해 알리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매매해버리는 현재 관행은 이런 법리와 한참 동떨어져 있고 매도인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임차인이 법인인 경우는 개인인 경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임차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앞서 본 바와 같은 임차인의 이의제기가 없는 한 건물양수를 통해 임대차계약이 당연승계되고, 보증금반환채무의 승계가 면책적이라는 법리 자체가 적용될 수 없다. 주임법상 대항력 적용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임대차보증금 승계 여부는 주임법이 아닌 민법과 계약해석의 원칙에 따르게 되는데,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법원은 기존 임대인 즉 매도인의 면책적 채무인수 인정에 있어 매우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대법원 2024. 10. 25.선고 2024다249378 판결【구상금】,
☞ 임차인(이 사건 00진흥원)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대신 변제한 도시주택보증공사가 매도인(기존 임대인)을 상대로 보증금상당 금원을 구상금으로 청구한 사안
【판시사항】
[1] 주택 임차인이 법인인 경우, 임차주택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당연히 승계한다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 이 적용되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 임대인이 법인을 임차인으로 하는 주택을 양도한 경우, 임대인의 법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가 소멸하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2] 부동산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위 인수가 면책적 채무인수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원칙적 소극) / 부동산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약정이 있는 경우, 그에 기한 면책적 채무인수의 효력이 발생하기 위한 요건(=채권자인 임차인의 승낙) 및 이때 임차인의 승낙은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한지 여부(적극) /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의 회수가능성 등이 의문시되는 상황인 경우, 임차인의 어떠한 행위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대한 묵시적 승낙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 【이유】
1. 인정된 사실관계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가. ○○○진흥원 (이하 ‘진흥원’이라 한다)은 2017. 5. 3. 피고로부터 대구 동구 (주소 생략) (명칭 생략) △△△동 □□□호 (이하 ‘이 사건 □□□호 ’라 한다), 같은 동 ◇◇◇호 (이하 ‘이 사건 ◇◇◇호 ’라 하고, 이들 부동산을 통틀어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를 각각 임대차보증금 86,000,000원, 임대차기간 2017. 7. 10.부터 2019. 7. 31.까지로 정하여 임차하는 내용의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다(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라 한다).
나. 원고는 진흥원과 이 사건 임대차계약 종료 시 임대인의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보증하는 내용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약정(이하 ‘이 사건 보증약정’이라 한다)을 체결하고, 2017. 7. 25. 각각 보증금액 86,000,000원, 보증기간 2017. 7. 25.부터 2019. 8. 31.까지로 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서를 발급하였다.
다. 피고는 2019. 5. 23. 소외인 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각각 매매대금 86,000,000원에 매도하였다(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이라 한다). 이 사건 매매계약서 특약사항 제4항에는 임대차보증금 86,000,000원은 매수자( 소외인 )가 승계한다고 기재되어 있다(이하 ‘이 사건 인수조항’이라 한다). 소외인 은 2019. 5. 24. 이 사건 □□□호 에 관하여, 2019. 5. 27. 이 사건 ◇◇◇호 에 관하여 각각 이 사건 매매계약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라. 진흥원은 2019. 9. 1.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기간만료로 종료되었음에도 소외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이 사건 보증약정에 따른 보증금 지급을 청구하였다. 원고는 2019. 10. 30. 진흥원에 보증금 합계 172,000,000원을 지급하였다.
마. 원고는 2020. 3. 26. 진흥원을 대위하여 피고와 소외인을 상대로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구하는 이 사건 지급명령을 신청하였다가 피고가 이의신청하여 소송으로 이행하였다.
2. 원심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임차인인 진흥원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인수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인정하거나 적어도 묵시적인 승낙을 하여 피고의 채무가 소외인에게 면책적으로 인수되었다고 판단하였다.
가. 피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 직후인 2019. 5. 28.경 진흥원에 매매계약 체결 사실과 소외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인수 사실을 통지한 다음, 2019. 5. 31.경 이 사건 인수조항이 기재된 매매계약서를 전달하였다. 당시 진흥원은 이에 대하여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외인의 변제능력 등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 사실이 없고, 진흥원의 임대차보증금 회수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 진흥원은 2019. 6. 3. 소외인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 해지를 이유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발송하였고 그 후 이사를 완료하였으니 내부 파손상태 등을 확인하라는 내용의 문자를 발송하였는데, 당시 피고에게는 아무런 의사표시나 통지를 하지 않았다.
다. 법무법인 신세기는 2019. 6. 28.경 원고를 대리하여 소외인에게 ‘진흥원이 원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권을 양도하였고, 임차주택을 양수한 소외인이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 에 따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도 승계하였다.’는 내용이 기재된 안내문을 보냈다. 당시 원고가 작성한 내부 문서나 보증채무 이행청구서에도 주채무자는 ‘ 소외인 ’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3. 대법원 판단
가. 관련 법리
1) 법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이 정하는 대항요건의 하나인 주민등록을 마칠 수 없는 점에 비추어 보면, 주택을 임차한 법인에게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 제3항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임차주택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당연히 승계한다는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도 주택 임차인이 법인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임대인이 법인을 임차인으로 하는 주택을 양도한 경우에는 임대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양수인이 면책적으로 인수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인의 법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는 주택 양도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아니한다 ( 대법원 2003. 7. 25. 선고 2003다2918 판결 참조).
2) 면책적 채무인수는 병존적 채무인수 또는 이행인수와는 달리 제3자가 채무를 인수함으로써 기존 채무자가 면책되므로, 어떠한 인수의 법적 성격이 문제되는 경우 이를 병존적 채무인수 또는 이행인수가 아니라 면책적 채무인수로 보는 데에는 엄격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부동산 매수인이 매매목적물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등을 인수하는 한편 그 채무액을 매매대금에서 공제하기로 약정한 경우, 그 인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매도인을 면책시키는 면책적 채무인수라고 볼 수 없다.
또한 부동산 매도인과 매수인 사이에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책적으로 인수하는 약정이 있었더라도 그에 기한 면책적 채무인수의 효력이 발생하려면 채권자인 임차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민법 제454조 참조). 이때 임차인의 승낙은 반드시 명시적 의사표시로 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임차인이 채무자인 임대인을 면책시키는 것은 그의 채권을 처분하는 행위이므로, 임대보증금 반환채권의 회수가능성 등이 의문시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의 어떠한 행위를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에 대한 묵시적 승낙의 의사표시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 대법원 2015. 5. 29. 선고 2012다84370 판결 , 대법원 2024. 6. 13. 선고 2024다215542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 이유와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관련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진흥원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적 인수를 묵시적으로 승낙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1) 이 사건 인수조항이 면책적 채무인수 약정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고 이를 병존적 채무인수 또는 이행인수에 관한 약정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채무인수가 면책적 인수인지, 병존적 인수인지가 분명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병존적으로 인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02. 9. 24. 선고 2002다36228 판결 참조). 부동산 매수인의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 인수가 이행인수에 해당하는 경우도 존재한다(앞서 본 대법원 2012다84370 판결 참조). 이 사건 인수조항에는 소외인 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인수한다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을 뿐 이를 넘어서서 피고가 채권자인 진흥원에 대한 관계에서도 채무를 면한다는 취지가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2) 설령 이 사건 인수조항이 면책적 채무인수 약정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진흥원이 이를 승낙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흥원은 원칙적으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법인이고, 피고나 소외인으로부터 전세권 등과 같이 임대차보증금 반환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을 별도로 제공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흥원의 승낙으로 면책적 채무인수의 효과가 발생하면 진흥원의 채권 실현 여부는 새로운 채무자인 소외인의 자력이나 채무이행의 성실성에 달려있게 된다. 결국 진흥원이 묵시적 승낙을 하였는지는 진흥원이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면책적 채무인수의 결과를 감수할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었는지에 관한 여러 정황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
3) 소외인의 자력은 진흥원이 면책적 채무인수를 승낙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진흥원이 이 사건 매매계약 무렵 승낙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소외인의 자력을 조사·확인하였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진흥원은 이 사건 매매계약서를 전달받은 후 3일 만에 소외인에게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 대한 해지 통지를 하였다. 이 사건 매매계약 당시 피고나 소외인이 면책적 채무인수에 대하여 진흥원에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는 객관적인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피고가 진흥원에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의 면책에 대한 승낙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거나, 진흥원과 소외인 사이에 새로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도록 하는 등 면책에 대한 승낙을 받으려고 노력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흥원이 선뜻 면책적 채무인수를 승낙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4) 당시 진흥원으로서는 면책적 채무인수를 승낙하여 피고가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면하도록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 소외인은 관련 형사사건에서 이 사건 부동산을 담보로 대부업체로부터 식품업체 운영자금을 대출받기 위해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고 진술하였다. 소외인은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한지 1~4일 만에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그로부터 약 20일 후에 대부업체에 채권최고액을 78,000,000원으로 하는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 주었다. 이러한 근저당권 설정으로 인해 진흥원이 임대차보증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5) 이 사건 매매계약 체결을 전후하여 원고나 진흥원이 한 행위도 진흥원의 묵시적 승낙을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 원고 대리인이나 진흥원이 소외인 에게 보낸 채권양도사실 알림에 대한 안내문, 이 사건 임대차계약 해지 통지와 이사 완료 통지 등은 진흥원의 면책적 채무인수 승낙까지 추단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니다. 진흥원 등의 이러한 행위는 소외인의 근저당권 설정으로 이미 이 사건 부동산의 담보가치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임대차보증금의 회수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통상적으로 주택임차인으로서 취할 수 있는 조치일 수는 있어도 피고를 면책시키는 승낙의 의사표시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다. 원심은 판시와 같은 이유로 진흥원의 승낙에 따라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가 소외인 에게 면책적으로 인수되었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 면책적 채무인수에서 묵시적 승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논리와 경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를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결국, 대항력 여부와 관계없이 매매대상물에 적지 않은 보증금이 있는 임차인이 있다면, 매도인의 불의타 방지차원에서 임차인의사를 사전에 확인하여 매수인과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기존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책임을 면한다는 취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소유자 아닌 과거 소유자(기존 임대인) 상대로 보증금을 청구하는 현상은 최근 들어 잦아지고 있는데, 이는 과거처럼 집값이 상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락하는 경향 때문이다. 집값이 보증금액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은 상황에서 자력없는 갭투자 매수인 상대로는 보증금을 전부 반환받기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부득이 과거 소유자를 상대로 권리구제를 받으려는 임차인이 증가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흐름에 대한 인식없이 과거처럼 무턱대로 임대차보증금을 공제하고 매매대금을 정산한 후 이전등기하는 현재의 부동산거래 관행은 새로운 상황변화에 맞게 적극 수정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최광석 로티스 최광석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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