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한은 고위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호텔과 관련된 예시는 중앙은행의 지급과 결제, 청산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쓴 것"이라며 "재정정책의 승수효과와 관련해 언급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작년 말 발간한 '한국은행과 지급결제제도'라는 제목의 책자에서 이 예시를 썼다. 여행객이 낸 5만원으로 호텔 주인과 정육점 주인, 양돈업자, 사료가게의 빚을 차례로 상환했다는 내용이다. 한은은 "주고 받을 금액을 계산하고, 확정하는 과정이 청산, 자금이체를 통해 확정된 채권·채무 관계를 종결하는 과정이 결제"라며 "(여행객이 냈던 5만원은) 중앙은행이 결제자금이 부족한 지급결제시스템 참가기관에 대해 일시적으로 대출해 이 과정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현재 일중당좌대출 제도를 통해 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해주고, 청산과 결제 작업이 완료되는대로 빌려준 자금을 당일에 회수하는 제도다. 자금공급을 통해 경제가 순환하는 것은 맞지만 매출이 일어나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는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다.
한은은 이 자료의 출처에 대해 지난 2011년 로버트 맥티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포브스에 기고한 내용을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맥티어 총재도 이 예시를 중앙은행의 역할과 관련해서 썼다. 그는 처음 자금을 공급한 사람을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으로 여겼다.
이에 앞서 2009년 미제스 인스티튜트에 올라온 글에서는 이를 역설적 사례로 언급했다. 이 글을 쓴 로버트 블루멘은 "'모두의 부채가 탕감됐습니다'라는 낙관적 얘기는 모든 부채가 경제 내부에 있는 폐쇄적 경제에서만 가능한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똑같은 상황을 두고 '모두의 자산이 감소했습니다'라는 비관적인 결론도 가능하다"고도 썼다. 자산인 채권이 부채인 채무와 함께 청산되기 때문이다.
한은이 '호텔 예시'를 썼다는 얘기는 한은 출신으로 이 후보의 경제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가 언급하면서 나왔다. 하 교수는 SNS에 "(한은도) 돈이 돌아야 거래가 생기고 빚도 갚게 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런 예시를 들었다"며 "케인즈의 유효수요이론과 그 예시를 두고 지금 어떤 경제학자도 이를 '땅구멍 경제학'이나 '폐광 경제학'이라고 호도하지 않는다"고 썼다.

다만 재정정책의 승수효과가 자금을 회수해도 남아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은 사정에 정통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정책을 통해 자금을 공급하면 승수효과를 통해 경제가 성장할 수는 있다"면서도 "마지막에 자금을 회수하면 그 효과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예시가 재정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스텝이 꼬인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