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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스며들고 번져, 마음에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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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김현호의 바벨의 도서관

빛 번짐과 비문증으로부터

한겨울의 새벽녘, 해 뜨기 전의 풍경은 적막했습니다. 새벽의 어둠 속에선 작은 빛조차 거의 없었고, 공간을 밝히는 것은 교통 신호등처럼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한의 인공조명 뿐이었습니다. 기분 탓인지 코와 입으로 찬 바람을 넘기면 기침이 심해질 것 같기에 오랜만에 마스크를 쓴 채 걸었습니다. 마스크의 윗부분으로 따뜻한 콧김이 새어 나가자 안경은 금세 불투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빛이 번지니까 근사하구나' 하고 말이죠. 붉은빛과 초록빛은 물론이고 백색의 빛은 파장 별로 나뉘어 무지개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팬데믹이 끝난 후 오랜만에 마스크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유난히 파란 하늘이 기억에 남는 그해 가을에, 아이들과 '라이온킹 바위'라고 이름 붙였던 산자락에서 고개를 들었을 때 알게 됐습니다. 마치 화선지 위에서 수묵화의 선이 번져 나가듯, 어쩌면 투명한 수조에 물감을 몇 방울 떨어트려 불규칙하게 확산되는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 '비문증(飛蚊症)'이라는 것을 말이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느껴지는 그 '번짐'은 서글프면서도 근사해 보였습니다. 꼭 드니 빌뇌브의 영화 <어라이벌(Arrival, 2017)>의 외계 생명체인 펩타포드가 비선형 언어를 써 내려갈 때처럼, 번지고 스며들며 이윽고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문증이고 본격적인 노안이 시작되는구나'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죠.

김환기의 바다와 타셈 싱의 우주

타셈 싱 감독의 영화 <더 폴(The Fall, 2008)>에는 주인공 어린이인 알렉산드리아가 실수로 쏟은 커피로 인해 흰 손수건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알렉산드리아와 또 다른 인물 로이의 '이야기' 속에서 덮어놓은 주검을 꾹 누르자 흰 천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으로 전환되죠. 이 영화에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장면이 수없이 펼쳐지지만, 번지고 스며들어 강렬했던 그 순간은 유난히 제 마음속에 깃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의 예술인 영화뿐만 아니라 그려지는 순간 영원히 멈춰버린 회화 작품에서도 번짐과 스며듦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번은 김환기 화백의 전시가 열리는 강릉시립미술관 솔올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의 작품 가운데에는 마치 물든 것처럼 푸르고, 번지거나 스며든 것이 많았습니다. 캔버스 위에서는 물론 다양한 질감의 섬유 위에 그려 놓은 그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생은 생전 기록을 통해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이 아니라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그래서일까요? 건축사무소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온통 백색으로만 지어졌는데, 전시를 보고 나와 파란 하늘과 맞닿은 건축물을 보자 김환기 선생의 말씀처럼 '푸른 물이 들 것처럼' 일렁였습니다.



그리고 김환기 선생의 쪽빛과 우주로부터 다시 사카모토 류이치의 푸르름을 떠올렸습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블루(Blu)'는 곡이 전개되는 사이 서서히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와 중첩됩니다. 클로드 드뷔시나 에릭 사티처럼 차분하게 시작했으나 26번째 마디부터 작은북(스네어드럼) 소리가 번지고 스며들어 결국 라벨의 '볼레로'처럼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라벨 '볼레로' 특유의 그 셋잇단음표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같은 주제가 점차 번져가는데요. 사카모토 류이치에게는 작곡을 하는 순간조차 클로드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이 늘 깃들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 ♪ 사카모토 류이치 - 블루]

스며드는 건축과 번지는 빛

거제도에 가면 땅에 묻은 집인 '지평집'이 있습니다. 건축 거장인 조병수 선생의 이 실험적 건축물은 마치 땅속으로 스며든 것처럼 보이는 점이 특징입니다.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은 주택부터 상업시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변주됐는데, '지평집'이나 '미음(ㅁ)자집'처럼 스며들게 지은 주택부터 음악감상실 '카메라타', 남해의 골프장 '사우스케이프' 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땅에서 번져 나간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조병수 건축가의 스며든 작품이 더욱 근사해지는 때는 햇살이 물들어 번지는 바로 그 순간입니다. 원래 건축물의 곁 또는 안으로 빛을 끌어오는 일은 롱샹성당(Notre-Dame du Haut, Ronchamp)과 라뚜레트(la Tourette) 수도원을 설계한 르코르뷔지에가 가장 잘하지만 조병수 건축가를 비롯한 한국의 거장들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근현대의 건축 거장인 김수근 선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요. 어느 해 봄에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양덕성당에 들러 운 좋게 스며드는 빛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단순히 '빛이 들었다'고 표현하기엔 부족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스며든 빛은 인공조명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오묘하고 영롱한 것이었습니다. 김수근 선생을 잇는 건축가 승효상, 조성룡 선생처럼 2세대 거장들도 설계 과정에서 구조와 형태는 물론 늘 빛이 어떻게 스며들어 번져가는지에 관해 사유했을 터입니다. 승효상 건축가의 밀양 명례성지, 대구 무학로교회가 그렇고 조성룡 건축가의 선유도공원, 지앤아트스페이스가 늘 스며든 빛을 품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의 고민도 비슷했으리라 짐작하게 됩니다.





물론 스테인드글라스로 스며든 빛이라고 하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대표적인데요.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차원의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적인 거장으로 유럽의 성당을 빛으로 물들이는 김인중 신부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등에서도 김인중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신봉동성당, 대전시 동구의 자양동성당에 김인중 신부의 작품이 설치되어 있어, 그 영롱하게 스며드는 빛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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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고 스며들어 깃드는 마음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낸 문장은 우리의 마음속까지 스며들고, 가족이나 진심을 나누는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는 정신의 깊은 곳까지 번져갑니다. 그런가 하면 스승의 가르침이나 부모님의 결정적 조언은 영원히 마음속에 깃들곤 하죠. 그러니 어쩌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었을 때 "서로에게 깃들고 스며든다"라고 말하는 문장은 소리 내어진 것 이상을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번지고 스며드는 이 과학적 현상을 연구자들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명쾌하게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햇살이 벽과 바닥에 스며들거나 염료가 섬유 속으로 물들어갈 때, 그저 물리적으로 깊게 엮이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처럼, 화학적 변화를 원소 기호와 계산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처럼(동요 <노을>의 노랫말 중)' 노을빛이 번지고 밥솥 위 수증기가 하늘로 스며들어 가는 이 순간, 문득 따뜻함으로 번져가는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초여름날의 저녁입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

오늘의 신문 - 2025.07.0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