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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불씨 살려라"…거래소, 넉달 만에 자문단 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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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넉달 만에 밸류업 자문단 소집
밸류업 지수 개편 등 논의

"주주가치 훼손 기업 빼야"…SKT도 거론
"밸류업 연속성 확인해 달라" 우려도

올 1월 이후 멈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자문단' 회의가 넉 달 만에 열렸다.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밸류업 정책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대된 가운데,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정책은 살아있다"는 신호를 전한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13일 '2025년 제2차 밸류업 자문단 회의'를 열고 업계와 학계, 연구계 전문가들과 밸류업 정책 관련 의견을 수렴했다. 지난해 3월 출범한 기업 밸류업 자문단은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세 등 대내외 변수가 대두되면서 올 1월 회의를 마지막으로 소집이 이뤄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밸류업 지수 개편 방향성 논의'가 주요 공식 안건이었다. 유상증자 등으로 다양한 경로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기업들이 지수에 포함돼 있는데,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이를 제외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쏟아진 것으로 파악됐다.

정치권에서 증시 최대 화두였던 '주주충실 의무' 도입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일반주주 권익 보호을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지수 내 주주가치를 희석시키는 기업들을 배출할 가능성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회의에서 구체적인 종목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최근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 고려아연 등 기습 유상증자 발표로 주주들 반발을 산 기업들 사례가 잇따른 바 있다.

회의에 참석한 자문단 한 위원은 "대선 후보들이 자본시장 선진화를 공통되게 주장하는 등 문제의식이 강해지고 있다. 때문에 지수 편입 요건 상에서 '기업 지배구조' 항목의 배점을 높인다든지, 편출 시 주주가치 훼손 기업을 빼낼 수 있는 정성적 요건을 추가한다든지 하는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며 "거래소에선 이날 나온 자문단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지수 방법론 수정안을 가져오겠다고 했다"고 귀띔했다.

이런 과정에서 '주주가치 훼손 기업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최근 대규모 해킹 사태로 뭇매를 맞은 SK텔레콤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최근 증권가는 해킹 사태에 휘말린 SK텔레콤에 대한 목표주가를 일제히 내렸다. 가입자 신규 모집 재개 시점이 불확실한 데다 고객 이탈, 위약금 면제·과징금 부과 여부 등 변수가 여럿이었다. 실제 SK텔레콤이 사고 발생 사실을 처음 알린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0일까지 KT·LG유플러스로 통신사를 바꾼 고객(번호이동) 수는 30만1342명에 달한다.

한 자문단 위원은 "지난해 10월 말 SK텔레콤은 밸류업 공시를 했지만, 대규모 해킹 사태를 냈다. 고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는데, 이런 경우 주주가치 훼손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고 말했다. 또 "유상증자가 꼭 '주주가치 훼손'으로 해석되긴 어려운데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수리를 안 해준다는 점만으로 지수에서 뺄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등의 논의도 활발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밸류업 지수는 지난해 9월 출범 당시부터 구성 종목 논란이 일었다. 펀더멘털 개선이 아닌 경영권 분쟁 등의 문제로 주가가 과도하게 오른 기업들이 포함되는가 하면 2년간 적자라서 정량 기준에 미달인 SK하이닉스도 들어갔다. 반면 기준에 부합한다는 평을 받은 일부 금융지주 등은 제외됐었다.

또 자문단 위원들 대다수는 다음달 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밸류업 정책의 연속성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해 초 금융당국이 처음 발표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자본시장 과제다. 향후 정권 구성 주체에 따라 밸류업 정책이 유지될지, 수정될지에 대한 시장 관심이 크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밸류업이 연속성을 가질 것으로 전망한다"며 정권과 무관하게 추진 가능하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자문단을 다시 가동한 것을 두고 "밸류업 정책을 이어가겠단 의지"로 해석하면서도, 실질적 제도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정책이 연속성을 가지려면 당국이 단순 논의에 그치지 않고 시장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며 "대선 전후로 밸류업 추진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국내외 투자자들과 상장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회의에서 논의된 사항을 토대로 밸류업 정책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다음달 중 지수 정기 리밸런싱이 예정된 만큼, 시장 의견을 충분히 들어 방향성을 보강할 것"이라며 "10년간의 연속된 정책 추진으로 성과를 본 일본의 사례를 보듯, 밸류업은 일관성이 특히 중요한 정책이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관계없이 일관되고 연속적으로 밸류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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