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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배우에서 팜므 파탈까지...눈망울의 마녀 아만다 사이프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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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눈망울의 마녀' 아만다 사이프리드

<맘마 미아!>로 아만사 사이프리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신작 <세븐 베일즈>는 깜짝 놀랄 작품이 될 것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나이가 먹어 보이기 때문이다. '허걱' 소리가 나온다. 근데 그건 꽤나 다이어트를 한 탓으로 보인다. 말라도 너무 말랐다. 가뜩이나 작은 얼굴에 턱선이 각지게 나온다. 사람은 살이 빠지면 늙어 보인다. 저런. 근데 사이프리드는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다. 1985년생이고 이제 갓 마흔이다.




여배우 열전을 쓰기 시작하면서 '남들이 다 언급하는 영화 얘기는 쓰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췟. 그건 너무 뻔하잖아, 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니 아만다 사이프리드 하면 흔히들 얘기하는 <맘마 미아!>와 <레 미제라블> 얘기는 뺄 것이다. 내가 그녀의 영화 중 인상적으로 본 작품은 '에게 겨우 그거야?'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인 타임>이라는 영화이다. 지금은 퇴락한 배우이자 한물간 가수 취급받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같이 나왔다. 팀버레이크뿐이겠는가. 이 영화에는 킬리언 머피도 나오고 올리비아 와일드도 나온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자신의 이미지처럼 부유한 집안의 딸이다. 여기서 ‘부유한’이란 ‘카운트 바디 시간’이 수백 수천만 시간이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시대 배경은 25세기로 이때가 되면 사람들은 죽지를 않는다. 다만 자기가 소유한 시간만큼만 산다. 팔뚝에 디지털시계가 심어져 있으며 타임 코드가 00:00:00이 되면 자동 심장마비사한다. 음식 한 끼에 몇 시간, 버스비는 거리에 따라 1시간에서 2시간, 집세는 몇백 시간, 이런 식으로 시간이 차감된다. 노동을 하거나 다른 불로소득으로 시간을 채워 나가면 되는데 주인공인 윌(저스틴 팀버레이크)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갈 시간을 번다.

우리의 여주인공 실비아,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부자마을 뉴 그리치에 살아가는 철모르는 억만시간장자의 딸이다. 실비아는 윌에게 납치되지만, 점점 더 그가 쫓기는 이유가 부당하다는 생각에 동의하게 되고 남자의 도주를 돕는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만큼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진, 납치된 여성 이미지가 딱 들어맞는 이미지의 여배우도 없다. 그런 면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신문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딸 패티 허스트의 얘기를 그린 영화 주인공으로도 딱일 것이다. 패티 허스트는 1974년 미국의 급진주의 테러 단체에 납치된 후 일당들과 함께 강도 약탈 범죄에 가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데이빗 핀처가 넷플릭스에 내놓은 걸작 <맹크>에서 윌리엄 허스트의 정부로 알려졌던 여배우 마리온 데이비스로 나온다.





실비아이든 패티 허스트든, 아니면 마리온 데이비스이든 납치된 여자, 부자의 정부(情婦) 이미지가 어울리는 건 순전히 사이프리드가 지닌 큰 눈의 매력 때문이다. 늘 그녀는 상대방을 쳐다볼 때나 말을 할 때 입이 아니라 큰 눈, 그 동공의 흔들림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눈은 예쁘다고 말하면 안 된다. 그 흔들리는 동공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가히 눈망울의 마녀라 부를만 하다. <인 타임>은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고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여기서 금발 대신 검은색 머리로 나온다. 사이프리드는 검은 머리일 때가 살짝 더 매력이 돋보인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아직 비교적 젊은 나이임에도 필모그래피가 엄청나다. 출연작 수가 46편에 이른다. 당연히 뛰어난 수작도 있지만 망작도 있다. 연기 욕심이 많고 가능한 한 연기 변신이 필요한, 도발적인 작품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가장 파격적인 작품은 영화 <러브레이스>일 것이다. 실존 인물 린다 러브레이스의 얘기를 그린 작품으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러브레이스가 찍었던 <딥 쓰로트>란 영화의 제작기를 담은 작품이다. 포르노 영화였고 포르노 여배우의 이야기였다. <딥 쓰로트>는 극장에서 상영된 최초의 포르노 영화였다. 단순 포르노 영화라는 점을 넘어서서, 1970년대 미국 사회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 고발자의 닉 네임이 ‘딥 쓰로트’였을 정도이다.

어쨌든 아만다 사이프리드같은 이미지의 배우가 다소 비천한 이미지의 린다 러브레이스 역할을 한다는 것 역시 충격이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스스로 가장 야하고 천박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타고난 게 그렇지 않은 여배우다. 포르노 배우처럼 보이기보다는 영화에서 그냥 예쁘고 순수한 처녀처럼 보인다. 영화는 섹스 행위를 거의 보여 주지 않으며 표현 수위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당연히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2013년 개봉 당시 흥행은 박살이 났다. 사람들은 차라리 포르노를 보면 봤지, 포르노를 묘사한 영화는 보지 않겠다는 심리를 내비쳤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고른 최악의 미스 캐스팅 작품으로 뽑힌다.



아마도 사이프리드가 <러브레이스>에 나갈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그전에 출연한 영화 <클로이>(2010)에서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고 자평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클로이>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성공한 대학교수(리암 니슨)를 그의 아내(줄리앤 무어)의 부탁으로 유혹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그 아내와도 잠자리를 갖는 여자로 나온다. 그리고 아예 그 남녀 집안에 들어가 가족 전체를 가스라이팅하려는 악녀 중의 악녀, 팜므 파탈로 나온다. 영화는 매우 흥미로우나 이 여자 주인공 클로이가 부부의 아들(맥스 티에리엇)까지 유혹하는 설정은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영화가 선을 넘었다는 평을 들었다. 아무리 자유분방해도 거기까지는 쉽지 않은 얘기다. 영화는 호평과 혹평을 오갔지만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살아남았다. 사이프리드는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근데 그게 독이 됐고 그 이후에 <러브레이스>(2013)같은 작품을 찍은 것이다. <클로이>의 감독이 아톰 에고이안이다. 최신작 <세븐 베일즈>도 그의 작품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왜 <세븐 베일즈>에 캐스팅됐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가장 예쁘게 나온 영화는 2011년 캐서린 하드윅이 만든 <레드 라이딩 후드>다. 금발의 사이프리드가 빨간 후드를 쓰고 나올 때 영화의 카메라가 여배우를 얼마나 예쁘게 포착할 수 있는가, 그 최고의 기술력을 알게 해 준다. 한국에서 제목을 천박하게 붙여서 그랬지 <부기우기: 상위 1%의 섹스>(2103)도 나쁘지 않은 작품이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비교적 착실하게 작품성이 있는 영화, 캐서린 하드윅 같은 실력파 여성 감독(하드윅은 원래 프로덕션 미술감독 출신이었다)의 영화들을 줄곧 골라왔다.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 46편 중 어떤 것은 대단히 성공했고(<맘마 미아!>1, 2·<레 미제라블>) 어떤 것은 그냥 그랬으며(<알파독>·<레터스 투 줄리엣>·<위 아 영>·<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등등) 어떤 것은 왜 이런 영화에 나왔을까 하는 작품(단편 <개를 찾습니다>·<19곰 테드2>·<아논> 등)도 있었다. 뭐 어떤가. 젊음은 실험이다. 무엇이든 시도하고 무엇이든 감행할 수 있는 때이다.

이번 <세븐 베일즈>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자신도 나이를 먹어감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븐 베일즈>에서 사이프리드는 오페라 <살로메>의 신인 연출가 역을 맡아 지금까지의 연기 패턴 중 가장 성숙한 연기를 펼친다. 나이를 먹어 가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것 역시 젊은 세대가 감행할 수 있는 도전이다. 나이를 먹은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감’조차 더 이상 보여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여전히 탐스럽다. 싱싱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느낌을 오래 간직할 배우이다. (아, 진부해라)



오동진 영화평론가

오늘의 신문 - 2025.05.1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