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무를 마친 해령이 기지 복귀를 시작했다. 소형 낚싯배가 예정 항로에 들어왔다. 주야간 광학카메라(EO/IR) 등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했다. 선수를 우측으로 틀며 피했다. 2시간 넘는 시연을 지켜본 그리스 합참 대표단은 “세부 제원과 공급 가능 일정 등은 어떻게 되느냐”고 한화시스템에 물었다.
한화시스템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무인수상정 수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날 시연을 참관한 그리스가 첫 고객 후보다. 해양 강국 그리스는 몇 년 전부터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난민으로 연안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앙숙 튀르키예와 해상 분쟁도 잦다. 6000개 이상의 섬과 복잡한 해안선을 인력으로 막는 것이 한계에 이르렀다. 그리스가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무인수상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연안 수색 구조 및 감시 정찰 임무를 하는 무인수상정 해령의 뜻은 ‘바다 유령(sea ghost)’이다. AI 기반 표적 탐지 기능 외에 무인 장애물 회피 기동, 자율 이·접안 시스템, 무인 해저면 스캐닝 기술 등을 갖췄다. 소형 낚싯배와 비슷한 12m 길이에 중량은 14t이다. 최고 속력은 40노트(시속 74㎞)까지 낼 수 있다. 임무 속력(20노트) 기준 최장 12시간, 약 440㎞를 자율 운항할 수 있다.
무인수상정은 기뢰 탐색·제거 및 해상 감시·정찰·전투 등에 최적화됐다. 미래 해군의 핵심 전력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해군은 국방개혁안 ‘국방혁신 4.0’과 연계해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정찰용 무인수상정, 전투용 무인잠수정, 함탑재 무인항공기 등의 무인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2027년까지 자율기뢰탐색체와 기뢰제거처리기 등을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해양경찰도 조만간 전국 지방청에 5척 안팎의 무인수상정을 도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시스템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해양무인체계 연구를 시작했다. 2011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주관한 국내 최초 무인수상정인 아라곤 1호의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한 게 시작이다. 한화시스템은 최근엔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군집무인수상정도 개발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세계 무인수상정 시장은 2034년 62억달러(약 8조6800억원)로 지난해(26억달러·약 3조6400억원)보다 두 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세계 각국 해군은 무인수상정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무인수상정에 단거리 미사일을 장착해 러시아 흑해 함대를 상대하고 있다. 대만은 중국 상륙부대를 막기 위해 최근 두 종류의 소형 무인수상정을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해군도 특수전 부대를 중심으로 자폭용 무인수상정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은 첫 무인수상정 수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가격과 성능 면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다. 회사 관계자는 “40년 넘게 함정 전투체계를 개발해 온 경험을 살려 무인수상정 등 해양 방산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거제=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