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경남 거제 장목항. 한화시스템 연구원이 그리스 합동참모본부 대표단 앞에서 무인수상정 ‘해령’에 기뢰 탐지 명령을 내렸다. 해령은 길이 3m 가량 되는 검은색 막대 모양의 음파탐지기(소나)를 해수면 아래로 담궜다. 항구 앞 대범벅도까지 약 1.5㎞를 이동하며 해저면을 훑었다. 부두 근처에 매설된 지름 1m 크기의 기뢰 모형을 찾아냈다.
임무를 마친 해령이 기지 복귀를 시작했다. 항로에 소형 낚싯배가 갑자기 끼어 들었다. 주·야간 광학카메라(EO/IR) 등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했다. 해령은 스스로 선수를 우측으로 틀며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2시간 넘게 임무 시연을 지켜본 그리스 합참 대표단은 “세부 제원과 납기 가능 일정 등은 어떻게 되느냐”며 해령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화시스템이 무인수상정 수출길 개척에 나섰다. 세계적인 해운 강국 그리스가 첫 후보 고객으로 떠올랐다. 그리스는 6000개 이상의 섬과 복잡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자체 해안 경비 인력으로 막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오래된 앙숙인 튀르키예와는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분쟁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스가 한화시스템이 개발한 무인수상정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해령의 그리스 수출이 실제로 이뤄지면 무인수상정으로는 첫 사례가 된다.
해령은 연안 수색 구조 및 감시 정찰 임무 수행이 가능한 무인수상정이다. 인공지능(AI) 기반 표적 탐지 기능 외에 △무인 장애물 회피 기동 △자율 이·접안 시스템 △무인 해저면 스캐닝 기술 등을 탑재 하고 있다. 길이는 12m로 소형 낚싯배와 비슷한 크기다. 중량은 14t으로 최고 속력은 40노트(시속 74㎞)까지 낼 수 있다. 임무 속력(20노트) 기준 최장 12시간, 약 440㎞를 자율 운항할 수 있다.
한국 해군은 국방개혁안 ‘국방혁신 4.0’과 연계해 해양 유·무인 복합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정찰용 무인수상정, 전투용 무인잠수정, 함탑재 무인항공기 등의 무인 전력 확보가 메인이다. 시범 부대로는 제5기뢰·상륙전단을 지정했다. 2027년까지 자율기뢰탐색체와 기뢰제거처리기 등을 실전 배치할 예정이다.

한화시스템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해양무인체계 연구를 시작한 기업이다. 2011년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가 주관한 국내 최초 무인수상정인 ‘아라곤 1호’의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한 게 시작이다. 한화시스템은 최근에는 국방과학연구소와 함께 ‘군집무인수상정’도 개발했다. 무인수상정 10대를 저궤도 위성통신으로 연결해 실시간 소통하며 군집 방어 전투 등의 임무를 시연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퓨처에 따르면 세계 무인수상정 시장은 2034년 62억달러(약 8조6800억원)로 지난해(26억달러·약 3조6400억원) 대비 두배 넘게 커질 전망이다. 실제로 세계 각국 해군은 무인수상정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무인수상정에 단거리 미사일을 장착해 러시아 흑해 함대를 상대하고 있다. 대만은 중국 상륙부대를 막기 위해서 최근 두 종류의 소형 무인수상정을 시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해군 특수전부대를 중심으로 자폭용 무인수상정 등을 개발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40년 넘게 함정 전투체계를 개발해 온 경험을 살려 앞으로 무인수상정 등 해양 방산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김진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