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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사람들이 쓰겠나?"…한은 실험에 쓴소리 나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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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 코인의 공습
(9) 대응책 부족한 한국

韓銀, 디지털화폐 실험 나섰지만…"반쪽짜리" 지적도

한은, 스테이블 코인 확산에 대응
지난달 주요 은행과 CBDC 발행

신용카드 대신 쓸 유인 부족
모든 거래 추적될까 우려도
"민간 생태계 지원에 집중해야"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으로 스테이블 코인 확산에 대응하고 있다. 한은은 직접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 인가까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지나친 중앙은행 주도의 움직임이 관련 생태계의 자생적 발전 가능성을 가로막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장단점 분명한 CBDC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과 시중은행은 지난 4월부터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CBDC 기반 예금 토큰 실험을 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 등 7개 주요 은행이 참여했다. 참여를 신청한 소비자 약 10만 명이 자신의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온·오프라인 결제에 쓰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은행 앱을 통해 QR코드로 결제하고, 가맹점은 실시간 정산이 가능하다.

한은이 어렵게 발을 뗐지만 일반 소비자로선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에 연결된 체크카드 대신 예금 토큰을 쓸 유인이 거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결제 수단보다 간편하지 않은 데다 이자 지급과 포인트 적립 같은 추가 혜택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프로젝트 한강에서 제공하는 혜택은 참여자를 모으기 위한 일시적인 혜택에 그친다.

CBDC를 사용하면 모든 거래가 추적 가능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관리하는 구조라 개인의 거래 정보가 실시간으로 중앙 시스템에 기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불법 자금 추적, 조세 회피와 자금세탁 방지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과도한 국가 개입 우려와 사생활 침해 논란도 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중앙은행(Fed)은 CBDC에 부정적이다. CBDC 실험을 하는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한은 관계자는 “예금 토큰 방식인 프로젝트 한강은 중국과 달리 중앙은행이 개인의 거래 정보를 알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CBDC가 중앙은행과 은행 간 결제나 지급준비율 조정, 단기 유동성 관리 등 ‘도매형’(wholesale)으로 운영될 때 가장 효율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기 때문에 ‘본원통화(M0)’와 마찬가지다. 은행들은 매일 지급준비율을 맞추기 위해 단기 자금시장에서 복잡한 거래와 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초단기 금리가 비정상으로 높아지는 현상도 발생한다. 자금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CBDC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운용 비용을 줄이고 단기 자금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계 지원에 집중해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CBDC와 달리 통화량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미 존재하는 원화 내에서 유통수단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통화지표로는 현금·예금 등이 포함된 ‘광의통화(M2)’에 해당한다. 미국 재무부는 스테이블 코인을 일종의 디지털 머니마켓펀드(MMF)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이 원화 스테이블 코인 인가를 담당하겠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선진국에 비해 스테이블 코인 관련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는데 아예 싹조차 틔울 수 없게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스테이블 코인 생태계에 벤처캐피털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제도적 불확실성과 규제 리스크로 관련 투자가 제한적이다.

암호화폐업계 관계자는 “스테이블 코인은 어떻게 보면 상품권인데, 중앙은행이 상품권을 인가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한은과 정부는 외국환관리법 등을 정비해 민간 사업자가 스테이블 코인 관련 사업을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5.1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