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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오페라발레의 별, 모든 춤이 다 되는 강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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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기점수 낮았지만 세계적 발레단에 통큰 도전
올 1월 차상위 등급인 '제1무용수'로 우뚝
"자신만의 매력 찾아 춤추는 프랑스 발레에 흠뻑 빠졌어요"

"바스티유 극장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있어요. 창밖을 보면 '나 정말 파리에서 춤추고 있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져요."



355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제1무용수가 된 발레리나 강호현(29)은 아르떼와 인터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이 발레단의 차상위 등급인 '프리미에르 당쇠즈'가 됐다. 에투알(수석무용수)이 된 자신의 모습도 그려볼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시즌이 끝나는 매년 여름에는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오지만, 올 8월은 강호현에게 특별하다. 일본 도쿄에서 동료들과 함께 갈라 공연인 '발레 슈프림'에도 참여할 계획. 영국 로열발레단과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단이 총출동하는데, 무대에 서는 인원들은 단연 핵심 무용수들이다.

2017년 입단한 강호현은 컨템퍼러리 발레, 고전 발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 받아왔다. 승급도 빨라 드라마 발레인 '메이얼링', '돈키호테'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등 고전 발레에서도 주역으로 섰다. 특히 현대 발레의 거장 윌리엄 포사이스가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위해 만든 작품 '블레이크 워크 1'에 출연할 무용수로 그를 직접 발탁하기도 했다. 꾸준히 지목받는 비결이 있을까. "저는 클래식 발레, 네오클래식 발레, 컨템퍼러리 발레 등 모든 춤을 좋아합니다. 제 장점은 어떤 장르에도 스며드는 무용수라는 점이에요. 그래서 다양한 캐릭터에 캐스팅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승급 당시의 기억을 더듬던 강호현은 목소리가 들떴다. "지난 연말부터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주역인 '오로라'의 언더스터디(대타)로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호세 마르티네스 감독님이 갑자기 '너 3월에 언더스터디 말고 진짜 오로라가 될 거 같다'고 하셨어요. 공연을 열심히 준비하던 중에 뜻밖에 제1무용수가 된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 놀랐답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은 재작년부터 승급 오디션이 사라지고 예술감독의 지명으로만 승급이 결정되기에 더욱 깜짝 발표였다는 후문이다.

지난 3월 강호현은 클래식 발레 중 가장 어렵다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오로라로 데뷔했다. "과하지 않게 16살 오로라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계속 연구했어요. 모든 게 처음인 공주의 첫 생일 파티잖아요. 조심스러우면서도 순수한 그런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관객분들이 호평해주셔서 다행입니다.(웃음)" 오로라였던 그는 얼마 후 '메이얼링'에서 해골과 권총을 든 여인으로, 이달 초 '실비아'에서 사랑의 화살을 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변신했다.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강호현은 학창시절 실기수업에서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고 했다. "부족한 실력이라고 생각했지만, 한번 뿐인 인생 꿈을 크게 꾸자는 마음 덕분에 파리오페라발레단 시험을 봤어요. 발레단이 완성된 재능에 주목하기 보단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를 봐주셨기에 제가 몸담을 수 있었죠. 발레단에서 보통 한 번에 3개의 레퍼토리를 연습하는데, 제가 압축적으로 성장하는게 느껴졌어요." 세계적인 안무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배울 수 있는 점도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로 누릴 수 있는 강점이다.



한국에 보편화한 러시아식 발레를 배운 뒤 프랑스 발레단에서 활동하게 됐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강호현은 "한국에 있을 때는 정해진 테크닉과 기준에 다 맞추려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는 무용수들의 몸은 전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춤을 춰요.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서 춤 추자는 분위기가 제게 잘 맞았기에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으로 달려왔네요."

3번째 단계인 쉬제(솔리스트)에서 2년만에 제1무용수가 됐으니 에투알 승급도 노려볼 만할 것 같다는 말에 강호현은 기분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떤 배역이든 욕심을 낼거고, 잘 해내고 싶어요. 제 한계를 넘어서는 게 목표입니다. 당연히 에투알이 되면 좋지만 그걸 위해 춤을 추는 건 아니에요."



최근 파리오페라발레단을 꿈꾸는 발레 유망주들도 적지 않다. 그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학교 다닐 때 실기등수 상위권이 아니었던 저도 발레리나로 살잖아요. 원한다면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어 철학자 같은 말도 남겼다. "각자 다른 길을 걷는 인생이에요, 인생의 결정적 시기도 다르지요. 누구와 비교해서 조급할 필요도 없고요. 무슨일을 하든 자기 인생을 진취적으로 찾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이해원 기자

오늘의 신문 - 2025.05.17(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