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인으로서는 짧은 기간을 보냈지만 한 전 총리가 잃은 것은 적잖다. 50년 동안의 공직생활을 통해 쌓았던 '합리적이고 성실하다'는 평가가 1주일 간의 단일화 샅바싸움과 새벽 기습 후보 등록으로 완전히 망가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형태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으면서 시작된 정치여정이 10일만에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한 전 총리는 지난 1일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자 저의 직을 내려놓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사퇴의 변을 남긴 뒤, 이튿날 국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한 전 총리가 출마선언문에서 띄운 '개헌'은 각계의 주목을 받았다. 취임 즉시 개헌을 논의할 기구를 설치하고, 집권 2년차에 개헌을 마무리해, 3년차에 개정 헌법에 따라 하야하겠다는 메시지는 강력했다. 정대철 헌정회장,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만나 개헌 빅텐트를 논의하며 개헌을 대선의 주요 아젠다로 올려놓았다.

첫 지방 방문지로 광주를 찾은 것도 주목을 받았다. 5·18 민주묘지에 참배하려다 시민단체와 몸싸움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저도 호남사람입니다", "서로 사랑해야합니다"라고 외치는 모습이 특히 화제가 됐다.
한 전 총리는 출마선언문에서 "내일(3일)부터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하나하나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공약 발표는 6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나왔고, 그마저도 정책대변인을 통해서였다. 두차례의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등을 거치며 쌓은 경제 정책 전문가의 면모를 보여줄 시간이 없었다.
단일화를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는 '협상 전문가'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됐다. 한 전 총리는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점을 들어 자신이 미국과의 통상 협상을 해낼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김 후보와 두차례 만났지만 단일화와 관련해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김 후보가 여론조사에 동의한 후 대리인 간 협상 때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협상을 하자는게 맞느냐'는 비판도 받았다. 당초 "단일화 방식은 일임하겠다"고 했던 발언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새벽 기습 입당과 단일 후보 등록은 '절차를 중시하는 합리적 공직자'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비대위의 김 후보 선출 취소를 기다렸다는 듯이 새벽에 유일 후보로 등록한 것은 평소 다수결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을 비판했던 그의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