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ONF) 내한 공연은 관전 포인트가 넘쳐나는 공연이었다. 우선 너무 오랜만에 한국 관객과 대면하는 ONF의 실체가 궁금했다. ONF는 파리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프랑스 수도를 대표하는 명문 교향악단이다. 다른 두 악단이 지난 20년 동안 몇 차례씩 내한 공연을 한 데 비해 ONF는 21세기 들어 한국을 찾은 적이 없다. 과연 ONF는 파리의 경쟁 악단에 비해 어떤 차별점 내지 특장점을 보여줄 것인가.
◇‘피아노의 젊은 차르’ 캉토로프
다음은 현임 음악감독 크리스티안 마첼라루에 대한 호기심이다. 1980년 루마니아 태생인 마첼라루는 지금 국제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신진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독일 쾰른의 서부독일방송(WDR) 교향악단을 2019년부터 이끌어왔고, ONF에는 2020년 부임했으며, 재작년부터 모국에서 열리는 에네스쿠 페스티벌의 예술감독도 겸하고 있다. 또 올가을부터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에서 음악감독 임기를 시작한다. 이번이 첫 내한인 만큼 마첼라루가 우리 관객에게 어떤 첫인상을 남길지도 각별한 관심사였다.
그리고 협연자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 있었다. 2019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우승과 함께 콩쿠르 역사상 단 세 번 수여된 ‘그랑프리’까지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 캉토로프는 현재 가장 각광받는 젊은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피아노의 젊은 차르’ ‘리스트의 재래’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그의 특출한 역량은 그간 수차례에 걸친 내한 공연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필자는 그의 내한 무대를 꾸준히 지켜봐왔는데, 한마디로 천재적인 선율·리듬·색채 감각을 보유한 특급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이국적 풍경 연상케 한 연주
이날 공연에서도 캉토로프의 감각은 여지없이 화려한 빛을 발했다. 그가 연주한 생상스의 ‘이집트 협주곡’은 그 안에 담긴 이국적 풍경들을 8K 화질의 생생한 색감과 필치로 그려 보이는 듯했고, 작곡가가 여행지에서 느낀 정취와 상념을 그윽하고 감미로운 와인 향기에 실어 전해주는 듯했다. 압권은 남국의 강렬한 햇살과 달밤의 은은한 시정을 아우른 2악장이었는데, 그의 터치가 미묘하되 뚜렷하게 변화할 때마다 배경 화면이 나일강에서 발리섬으로, 이베리아반도에서 다시 나일강 변으로 스륵스륵 순간이동하는 듯했다. 관객은 미소가 실린 박수갈채를 보냈고, 캉토로프는 이에 화답해 앙코르 두 곡을 선사했다. 달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에서는 숨이 멎도록 절묘한 선율 감각을 들려줬고, 베체이/치프라의 ‘슬픈 왈츠’에서는 감수성에 따라 흐르고 흔들리는 리듬 감각의 극치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ONF와 마첼라루는 어땠을까. 일단 협주곡의 반주는 상당히 충실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보다 능동적인 자세가 아쉬운 순간도 있었으나 단원들은 마첼라루의 세심한 조율에 따라 협연자 연주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악단의 역량이 한층 잘 드러났던 것은 첫 곡, 생상스의 ‘교향적 회화’ 중 3악장을 연주할 때였다. 비교적 단순한 소재와 절제된 관현악법으로 풍부한 음률을 빚어내야 하는 이 곡에서 마첼라루는 진중하고 절도 있는 비팅으로 악단에서 응집력 강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각 악기군의 개성이 도드라지기보다는 모든 파트를 고르게 아우르는 수렴성과 통합성이 돋보이는 호연이었다.
◇젊은 기운 넘친 마첼라루
반면 메인 프로그램인 ‘오르간 교향곡’ 연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아쉬운 부분 몇 군데를 집어내기엔 합주의 완성도, 해석의 완결성, 오르간 음향 활용 등 여러모로 부족했다. 프랑스 악단들의 자랑인 목관 파트의 활약도 예상만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서로 떨어져 있는 악기군 간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적지 않았는데, 어쩌면 잔향이 긴 낯선 공연장에 적응이 덜 된 탓은 아니었을까 싶다. 혹은 이틀 전 입국한 단원들의 피로도가 발목을 잡았을 수도 있겠다. 다만 단원들을 끊임없이 독려하며 굽힘 없이 음악을 앞으로 밀고 나가던 마첼라루의 의지와 열의 넘치던 태도, 젊은 기운과 열정으로 가득하던 그 해석만큼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남은 공연에서는 사뭇 다른 모습과 한결 완성도 높은 연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