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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가 무효이니 10년치 임금을 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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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HO Insight



대법원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시한 이후(대법원 2022. 5. 26. 선고 2017다292343 판결), 많은 사업 또는 사업장들에서 임금피크제 소송이 진행되었다. 물론 예외적인 판결들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법원은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직무변환이나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실질적 대상조치가 없다면 무효로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무효로 판단되는 경우 근로자는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청구할 수 있고, 임금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이므로 대부분 소송제기일로부터 3년 전까지의 임금 또는 퇴직금을 청구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사건에서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연령차별이므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10년치 임금 또는 퇴직금을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피해자가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기 때문이다(민법 제766조).

위와 같은 논리는 이미 불법파견 사건에서 사용된 적이 있다. 불법파견과 관련하여 법원은 직접고용의무 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권은 그 실질이 임금채권과 같다는 이유로 3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하면서도(서울고등법원 2023. 2. 10. 선고 2021나2015497 판결),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와 임금 차별을 근거로 한 불법행위 손해배상채권은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29571 판결). 최근에는 이에 근거하여 대부분 불법파견 사건에서는 10년치 임금 및 퇴직금을 청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파견법이 금지하는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이 불법행위라면, 임금피크제 역시 고령자고용법이 금지하는 연령차별에 해당하므로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 근로자측의 논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근로자측의 논리는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

불법행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해행위, 위법성, 고의 또는 과실, 손해발생, 인과관계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 도입한 임금피크제가 사후적으로 고령자고용법에 위반한 연령차별로 판단되어 위법한 것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그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신중하게 접근되어야 한다.

우선 임금피크제는 정부가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권장한 것으로서 법정 정년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정부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도입도 적법한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지원금을 지급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임금피크제 도입 시 대상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것 역시 관련 법령에 정해진 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부 매뉴얼에서도 권고조치에 불과하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이를 인식한 사용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근로자들로부터 적법하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관한 동의를 받은 경우에는 사용자 뿐만 아니라 근로자들 역시 해당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10여년간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오면서 이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는 근로자들 역시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불법파견의 경우 이미 2008년 경부터 사내하도급이 실질적으로 불법파견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반면, 임금피크제는 2022년이 되어서야 연령차별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을 고려해 보면, 예견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불법파견과 임금피크제는 전혀 다르다고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하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 단순한 법률의 부지에 불과하고 과실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용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더욱이 노동관계법령을 위반하는 경우에 모두 불법행위가 된다고 판단한다면 임금채권을 3년으로 제한한 입법자의 취지가 몰각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징계해고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그러한 사유만에 의하여 곧바로 그 해고 등의 불이익 처분이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1996. 4. 23. 선고 95다6823 판결 등). 이를 고려하면 임금피크제 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법리가 원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일부 하급심에서는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에 해당한다는 것만으로는 불법행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근로자의 주장에 경도되어 임금피크제가 연령차별이라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쉽게 인정하고 있는 판결들도 있어 주의를 요한다. 향후 대법원에서 이와 같은 쟁점에 대해 명확하게 판단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오늘의 신문 - 2025.04.19(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