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올해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월가에서 확산하고 있다. 최근 경기 둔화를 시사하는 경기 지표가 잇따르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다.
◇ ‘美 침체’로 기우는 월가
트럼프 행정부가 12일 철강·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다음달 2일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하는 등 관세 정책에 속도를 내면서 월가 투자은행들은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여 잡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0일(현지시간) 올해 미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1.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투자자에게 보낸 메모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정책에 대한 우리의 가정이 상당히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올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도 15%에서 20%로 올렸다. 골드만삭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훨씬 더 나쁜 (경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관세)정책에 전념한다면 침체 확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JP모간체이스는 올해 초만 해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위험을 30%로 봤지만 최근 40%로 높여 잡았다. 브루스 카스만 JP모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극단적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이 올해 경기 침체에 빠질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리서치업체 야데니리서치는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다는 확신이 20%에서 35%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해 1.5%, 2026년 1.2%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 위험한 美 경제 지표
월가에서 미국 경제에 대한 회의론이 커진 것은 관세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공개된 각종 경제 지표에서 심상찮은 추세가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에서 경기 둔화 징조가 두드러진다. 경제조사단체 콘퍼런스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는 98.3(1985년=100 기준)으로, 1월 대비 7포인트 하락했다.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도 지난달 64.7로 1월(71.7)보다 7포인트 떨어졌다.
애틀랜타연방은행은 지난 6일 미국 경제가 올 1분기에 마이너스 성장(-2.4%)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발 관세 공포’까지 겹치자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것이다.
‘미국 경제는 괜찮다’는 낙관론도 있다.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달 7일 공개연설에서 “미 경제는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해왔다”고 했다. 시장에선 오는 18, 19일 열리는 Fed의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을 95%로 보고 있다. 경제 상황이 Fed가 당장 금리를 내려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월가 업체인 캐피털이코노믹스도 올 1분기엔 미 경제가 역성장(-1.9%)하겠지만 2분기엔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 “S&P500, 4200 갈 수도”
미 증시 전망은 엇갈린다. 당초 월가에선 올해 S&P500지수가 지난해 상승률(23%)만큼은 아니지만 연평균 상승률(약 10%) 정도는 달성할 것으로 봤다. 투자회사인 오펜하이머는 올해 말 S&P500이 7100까지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단순히 협상용으로 쓰는 게 아니며 경기 침체나 증시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관세를 부과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BCA리서치는 S&P500이 올해 4200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 회사는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에 접어들었을 확률이 50%”라며 “경기 침체가 3월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