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격 폭등의 이면엔 한국 그래픽카드 시장의 불투명한 유통 구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가 수입사, 총판, 대리점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매점매석과 물량 조절을 통해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얘기다. 일각에선 유통업체의 ‘담합’ 가능성을 의심하며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023년 기준 26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그래픽카드 시장의 90%는 엔비디아 몫이고, 나머지 10%를 AMD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 그래픽카드 시장 규모는 수천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래픽카드 가격 폭등의 1차 원인은 엔비디아의 GPU 공급 부족이다. 그래픽카드 제조사 조텍의 한국지사 관계자는 “엔비디아에 GPU를 요청해도 항상 부족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엔비디아가 GPU 생산을 맡기는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대만 TSMC에 전 세계 테크기업의 생산 주문이 몰린 탓이다. 엔비디아가 확보한 캐파(생산 시설)를 게임용보다 마진이 높은 인공지능(AI) 가속기용 GPU에 ‘올인’하는 것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시장에서 국내 유통업체의 ‘매점매석’과 ‘물량 조절’을 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유다. 용산 전자상가 관계자는 “수입사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총판 공급 가격을 400만원대에서 500만원대로 올렸다”며 “연쇄적으로 총판은 600만원대에 대리점에 팔고, 대리점은 700만~800만원대 가격을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입사는 가격 폭등의 원인을 도·소매상에 돌린다. 한 그래픽카드 수입사 임원은 “수입사는 많게는 조(兆) 단위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소비자 신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며 “가격을 갖고 장난치는 건 주로 총판이나 대리점”이라고 했다.
중국 보따리상의 ‘사재기’도 품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미국의 GPU 수출 규제로 중국에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자 한국 시장을 찾는다는 얘기다. 그래픽카드에서 GPU만 떼어내면 AI 학습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엔비디아가 보급형 모델인 ‘RTX 5060’을 내놓으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RTX 5090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이 제품 가격은 50만원대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사 관계자는 “이달엔 5070, 4월엔 5060이 시장에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AMD가 최근 내놓은 신형 그래픽카드로 일부 수요가 옮겨 갈 것으로 예상한다.
황정수/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