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샤워는 15분, 벌레 잡는 분만…" 대학생 글 올린 이유가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일부 학교 룸메 선택 가능해지면서
온라인 커뮤니티로 룸메 구하기 유행
구체적 요건 적시한 '체크리스트'도
"학교 생활에 도움" vs "사회 부적응"


"제가 벌레를 잘 못 잡아서 벌레 잡을 수 있는 분이어야 하고요, 성격유형검사(MBTI)는 ENFP면 좋겠어요. 또 같이 배드민턴 치고 싶어서 운동 좋아하시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20대 대학생 박 모 씨는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내용의 글을 올려 기숙사 룸메이트를 구했다. 랜덤 배정되는 룸메이트와 맞지 않을 때 감정 소모가 클 것을 우려해 가치관과 취향이 잘 맞는 '맞춤형' 룸메이트를 찾기 위해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룸메이트르를 구한 박 씨는 "나는 그가 기숙사에 친구를 데려오는 걸 허락해주고, 룸메이트는 내가 못 잡는 벌레를 잡아주니 만족도가 높았다"며 "지금은 대학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 씨와 같은 방식으로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의 '옴니보어'(Omnivore)로 표현되는 '초개인화' 성향이 MZ(밀레니얼+Z)세대의 룸메이트 구하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취향' 따라 룸메이트 취사 선택
21일 대학가에 따르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매우 구체적인 요건을 제시하며 룸메이트를 구하는 젊은 세대의 게시물이 증가하고 있다. 룸메이트가 랜덤으로 배정돼왔던 과거와 달리 요즘 일부 대학들은 룸메이트를 선택해 입사하는 방식도 채택하면서다.

한 커뮤니티에서 룸메이트 구인 글 작성자 A 씨는 "마라탕을 무척 좋아하는데 같이 배달로 마라탕 시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룸메이트와 배달 음식을 자주 같이 시켜 먹을 텐데 편식이 심하신 분은 사양하겠다"고 적었다.

또 다른 학생 B 씨는 "같이 수다 떨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MBTI에서는 E(외향적) 성향을 원한다"며 "방 꾸미는 것을 좋아해 같이 쇼핑하고 예쁘게 꾸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막 제대하다 보니 군 생활이 몸에 배서 상대방도 군필이었으면 좋겠다" 등 구체적인 구인 요건을 적시한 글들이 다수 확인된다.

대학생들 사이 '기숙사 룸메이트 체크리스트'도 유행할 정도다. 체크리스트는 자신의 특징을 고르는 문항과 원하는 상대방의 특징을 고르는 문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샤워 소요 시간 △운동 여부 △야식 먹는 빈도 △벌레 잡기 가능 여부 △함께 하고 싶은 것 등으로 구성됐다. 일부 학생들은 이렇게 작성한 체크리스트 사진을 공유하며 원하는 룸메이트를 찾아 나서고 있다.

2030 플랫폼 어피티가 지난해 4월 MZ세대 1206명을 대상으로 친해지기 편한 사람의 조건에 대해 물은 결과, 86.5%가 '나와 가치관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

일부 학교에서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성향이 안 맞는 룸메이트에 따른 민원이 잇따른 영향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랜덤 룸메이트를 받아들여야 하는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이어진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이 모 씨는 신입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랜덤으로 배정된 룸메이트가 밤늦게까지 방에서 공부해 수면에 불편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당시 학번 순으로 학교가 룸메이트를 지정해줬다"며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설문조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생활에 도움 될 것" vs "사회 부적응 우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학생들의 안정적인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무작위로 룸메이트를 배정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잘 맞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학교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생활하다 사회에 나올 경우 부적응이 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MZ세대 부모들은 아이의 개성을 최대한 배려하는 방식으로 양육했다. 취향이 맞는 사람과 룸메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라면서 갈등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MZ세대에게 자연스러운 부분일 수 있다"면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만을 고집할 경우 갈등을 경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환경 자체를 회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2.2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