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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벌레를 잘 못 잡아서 벌레 잡을 수 있는 분이어야 하고요, 성격유형검사(MBTI)는 ENFP면 좋겠어요. 또 같이 배드민턴 치고 싶어서 운동 좋아하시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20대 대학생 박 모 씨는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내용의 글을 올려 기숙사 룸메이트를 구했다. 랜덤 배정되는 룸메이트와 맞지 않을 때 감정 소모가 클 것을 우려해 가치관과 취향이 잘 맞는 '맞춤형' 룸메이트를 찾기 위해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룸메이트르를 구한 박 씨는 "나는 그가 기숙사에 친구를 데려오는 걸 허락해주고, 룸메이트는 내가 못 잡는 벌레를 잡아주니 만족도가 높았다"며 "지금은 대학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라고 말했다.
최근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박 씨와 같은 방식으로 룸메이트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다는 뜻의 '옴니보어'(Omnivore)로 표현되는 '초개인화' 성향이 MZ(밀레니얼+Z)세대의 룸메이트 구하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커뮤니티에서 룸메이트 구인 글 작성자 A 씨는 "마라탕을 무척 좋아하는데 같이 배달로 마라탕 시켜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룸메이트와 배달 음식을 자주 같이 시켜 먹을 텐데 편식이 심하신 분은 사양하겠다"고 적었다.
또 다른 학생 B 씨는 "같이 수다 떨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MBTI에서는 E(외향적) 성향을 원한다"며 "방 꾸미는 것을 좋아해 같이 쇼핑하고 예쁘게 꾸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애니메이션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막 제대하다 보니 군 생활이 몸에 배서 상대방도 군필이었으면 좋겠다" 등 구체적인 구인 요건을 적시한 글들이 다수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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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플랫폼 어피티가 지난해 4월 MZ세대 1206명을 대상으로 친해지기 편한 사람의 조건에 대해 물은 결과, 86.5%가 '나와 가치관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
일부 학교에서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성향이 안 맞는 룸메이트에 따른 민원이 잇따른 영향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랜덤 룸메이트를 받아들여야 하는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이어진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20대 이 모 씨는 신입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을 때 랜덤으로 배정된 룸메이트가 밤늦게까지 방에서 공부해 수면에 불편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당시 학번 순으로 학교가 룸메이트를 지정해줬다"며 "개인의 성향을 파악하는 설문조사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만 생활하다 사회에 나올 경우 부적응이 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MZ세대 부모들은 아이의 개성을 최대한 배려하는 방식으로 양육했다. 취향이 맞는 사람과 룸메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라면서 갈등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MZ세대에게 자연스러운 부분일 수 있다"면서 "성향이 비슷한 사람만을 고집할 경우 갈등을 경험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환경 자체를 회피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