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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당 가격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명품 시계 업체들이 잇따라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어느정도 명품 수요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명품 가운데 의류, 핸드백 등 패션 부문은 주춤한 반면 초고가 시계는 여전히 매출이 느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에서 명품 시계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수요가 강력한 한국을 겨냥해 플래그십 매장이나 직영 매장을 열어 전방위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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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업계에 따르면 롤렉스는 서울 청담동에 ‘익스클루시브 롤렉스 부티크’ 개장을 앞두고 있다. 롤렉스 공식 딜러사 로카(Rocca)를 운영하는 이탈리아 명품그룹 다미아니그룹에서 문을 여는 매장이다. 롤렉스는 스위스 본사가 직영 매장을 운영하지 않고 매장 각각을 독립된 딜러사에 맡기는 방식을 취하는데 로카는 글로벌 최대 딜러사 중 한 곳이다.
익스클루시브 롤렉스 부티크는 플래그십 스토어로 7층짜리 초대형 매장으로 꾸며진다. 주로 백화점 명품관에 입점하는 일반 소형 점포에 비해 큰 규모다. 주로 각국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특화매장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장 자체가 많지 않다. 국내 시장엔 처음 들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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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가 시계 브랜드 중 하나인 스위스 오데마 피게의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인 AP하우스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서울 청담동에서 AP하우스 서울(AP HOUSE SEOUL) 프리 오프닝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앞서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리차드밀도 작년 서울 청담동에 기존 부티크를 대거 확장해 개장했다. 이 브랜드 시계는 어지간한 집 한 채와 맞먹는 수억원대 가격을 자랑하지만 ‘한정판'이란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매장에선 종종 오픈런 대란 펼쳐지기도 한다.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 한 방송에 착용하고 나와 유명해진 72만5000달러(약 10억4000만원) 상당의 시계가 리차드밀 RM27-03 뚜르비옹 한정판 제품이다. 배우 남궁민도 국내 리셀 시장에서 5억원 넘는 값에 팔리는 이 브랜드 RM055 부바 왓슨 화이트 드라이브 모델(출시가 약 1억2000만원)을 차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해외 여느 유명 도시에서도 찾기 힘든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서울에 연이어 들어선다는 건 그만큼 명품 시장에서 높아진 한국의 글로벌 위상을 말해준다. 최근 국내 명품 수요는 하이엔드 브랜드로 옮겨가는 추세다. 지난해 샤넬을 비롯해 디올·구찌 등 대중성 높은 명품 브랜드 매출이 줄줄이 감소했지만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은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백화점의 주얼리·워치 제품군 매출은 전년(2023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업체별로 롯데백화점 매출이 15%, 신세계백화점 21%, 현대백화점은 23% 늘었다. 2023년 주요 백화점의 주얼리·워치 매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5~11% 수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장폭이 훨씬 가팔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초고가 시계 수요가 급감하는 것과는 분위기가 정반대다. 좀처럼 가치가 하락하는 법이 없는 롤렉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등 세계 3대 명품시계 브랜드 중고 가격은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정도로 떨어졌다. 영국의 트레이딩 플랫폼 서브다이얼이 명품 중고시계 50개를 추적한 결과 지난해만 6% 가까이 하락했다. 롤렉스는 약 5.1%, 파텍 필립은 4%, 오데마 피게는 7.5% 각각 떨어졌다. 한국 시장에서 여전히 수천만원씩 웃돈이 붙는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 시계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