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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모의 뉴욕필 데뷔, 투명 수조 속에 갇혀있다 마침내 깨어난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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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2월 11일 美 뉴욕 필하모닉 '음력설 음악회' 공연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뉴욕필 데뷔 무대

이첸의 '중국 민속무용 모음곡' 등 연주
솔리스트 부각되도록 악상 조정 못한 지휘 아쉬워

진은숙 작곡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광기 어린 티파티(A Mad Tea-Party)’ 연주는 청중 압도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의 오케스트라들은 ‘음력설 음악회(Lunar New Year Concert)’를 개최한다. 이 음악회에서는 주로 아시아계 지휘자와 연주자가 무대에 오르며, 중국 또는 한국계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된다. 뉴욕 필하모닉 역시 이러한 전통을 따른다. 최근 뉴욕 필과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 클라라 주미 강도 음력설 음악회를 통해 무대에 섰으며, 작곡가 김택수의 작품과 소프라노 조수미 또한 이 음악회를 통해 뉴욕 필과 만났다. 지난 2월 11일에 열린 올해 음력설 음악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솔리스트로 초청되어 뉴욕 필하모닉과의 데뷔 무대를 가졌다.



올해 뉴욕 필은 세 명의 동양계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다. 첫 곡은 중국 작곡가 리환지의 ‘춘절서곡(Spring Festival Overture)’으로, 중국의 춘절(음력설)을 기념해 작곡된 작품이다. 이 곡은 음력설 기간에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 중 하나로, 2007년 중국의 달 탐사선 창어 1호에 실려 우주로 발사될 만큼 중국 내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번 연주에서 양인모가 연주한 작품은 이첸(Chen Yi)의 ‘중국 민속무용 모음곡(Chinese Folk Dance Suite)’이다. 제목만으로는 이 곡이 어떤 형태의 작품인지 알 수 없지만, 작곡가는 이 곡을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 설명했다. 이첸은 중국 베이징 오페라 오케스트라에서 수년간 악장으로 활동한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으로, 중국 음악의 전통을 서양의 언어로 구현하는 흐름을 이끌어온 작곡가다. 솔리스트에게 상당한 기교를 요하는 이 곡은 중국, 아라비아, 스페인의 음악이 혼재된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까다로운 작품이다.

이 모음곡은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다. ‘사자춤(Lion Dance)’으로 이름 지어진 첫 악장은 양인모의 화려한 독주로 시작되었다. 타악기 그룹과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무심하게 던져놓은 리듬 위에서, 그는 유영하듯 기교를 뽐내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러나 악곡이 진행되면서 금관악기군을 필두로 다른 악기들이 점점 늘어나며, 전체 사운드는 그의 턱밑까지 차올랐다. 패턴 없는 불규칙하고 빠른 랜덤 패시지를 일필휘지하듯 휘몰아치던 그의 활은, 마치 투명 수조와 같은 거대 악기군 속에 먹먹하게 갇혀 버리는 순간들을 맞닥뜨렸다.



양인모가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NEC)에서 공부하던 시기에 미리엄 프리드 교수의 지도 아래 함께 공부했던 오랜 동료이자, 뉴욕 필의 대만계 바이올리니스트 황이정(I-Jung Huang)은 연주를 마친 직후 양인모의 소리가 객석까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는지를 되물었다. 그는 리허설 과정부터 밸런스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모음곡 형태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자주 연주되지 않는 이유를 그 ‘의구심’에서 찾았다. 실제로 1악장과 3악장의 여러 부분에서 솔로 바이올린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듯 솔로 바이올린의 소리를 증폭하지 않는 이상, 유일한 해결책은 지휘자의 판단에 달려 있었다. 솔리스트와의 협업에서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양측의 밸런스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중국 출생 뉴질랜드의 젊은 지휘자 티안이 루(Tianyi Lu)의 기치가 아쉬웠다. 필요에 따라 솔리스트를 악단에서 객석 방향으로 한 발 더 떨어뜨려 두거나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의 수를 더 줄이는 방법도 있으며, 솔로 파트가 충분히 부각되는 지점까지 오케스트라의 원래 악상을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권한도 지휘자의 몫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정직하게 악상을 따른 지휘자의 선택이 현명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양인모와 오케스트라가 동시에 좋은 합을 이뤘던 장면은 2악장 ‘양고(Yangko)’였다. 동양적 색채가 잘 드러난 느린 선율 사이로 공간을 유영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지평선이 보이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장면을 그려냈다. ‘무캄(Muqam)’으로 명명된 3악장은 위구르 민족의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7/8박자 리듬이 악장 내내 열정적으로 흘러갔다. 악장 후반부에 등장한 카덴자는 그동안의 음향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양인모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이날 진은숙 작곡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 중 ‘광기 어린 티파티(A Mad Tea-Party)’도 연주되었다. 이 장면은 앨리스의 여정을 불안정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그려내는 중요한 부분이다. 2분 길이의 짧은 연주에서 정교하면서도 분주하게 반복되는 리듬과 독창적인 색채가 견고한 구조 안에 자리 잡았다. 환상과 현실이 눈앞에서 뒤엉키며 혼란의 정점으로 미친 듯 치닫던 순간, 음악이 멈추며 관객들의 숨통을 끊어 놓듯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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