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7개 주요 방산 기업의 수주 잔액이 사상 처음 100조원(작년 말 기준)을 돌파했다. 1975년 M1 소총 탄약 6억원어치를 필리핀 등에 수출한 지 50여 년 만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여파로 세계 각국이 방위비 증액에 나선 만큼 ‘K방산’을 찾는 수요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방산 부문 실적만 따로 떼어내 공개하는 7개 대기업의 작년 말 기준 수주 잔액은 모두 105조6000억원이었다. 기업별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32조4000억원), 한국항공우주산업(KAI·24조7000억원), LIG넥스원(20조1000억원), 한화시스템(8조6000억원), 한화오션(7조5000억원), HD현대중공업(4조5000억원), 현대로템(3조9000억원) 등이다. 7개사의 수주 잔액은 2023년(94조7000억원)보다 11.7% 늘었다. 2021년(52조300억원)과 비교하면 3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덕분에 7대 방산 기업은 3~5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방산기업의 곳간을 채운 일등 공신은 수출이다. 2020년 30억달러(약 4조3000억원)이던 방산 수출액은 지난해 95억달러(약 13조7000억원)로 수직상승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며 자주포 전차 등 재래식 무기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이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은 10~20년 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방산 강국’인 독일 등 유럽 기업이 군비 감축 움직임에 발맞춰 생산력을 줄인 틈을 K방산이 파고들었다는 얘기다.
한국 방산기업의 영역은 육·해·공을 넘나들며 유럽부터 중동, 동남아시아, 미국 등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LIG넥스원은 지난해 9월 이라크와 3조7000억원 규모 지대공 유도미사일 수출 계약을 맺었고, KAI는 필리핀과 1조원 규모 FA-50 전투기 수출을 논의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미국 군함 물량을 따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김진원/김형규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