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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머리 좋고 똑똑한 한국인…아디다스도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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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M '제 2 전성시대'
(1) 사양길 접어들던 K슈즈의 부활

매년 5만개 신제품 쏟아내며 제조혁신
글로벌 러브콜에 'ODM 빅3' 최대 실적

글로벌 유명 브랜드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한국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의 실적이 뚜렷이 개선되고 있다.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서도 지난해 국내 신발 ODM 업체의 매출은 1년 전보다 10%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가방·의류 수탁생산이 회복세를 보이고 뷰티와 바이오 분야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등 ‘한국형 ODM’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3대 신발 ODM 업체인 TKG태광(옛 태광실업), 화승그룹(화승인더스트리, 화승엔터프라이즈), 창신INC의 지난해 매출은 9조3000억원으로 추정됐다. 코로나19 직후 해외 주문량이 일시적으로 급증한 2022년(9조6156억원) 수준을 회복했다. 증권가는 이 회사들의 올해 매출이 10조원을 돌파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빅3’ ODM 업체의 영업이익도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463억원으로 2023년 전체 이익(5201억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기존 최대치인 2022년의 6640억원을 훌쩍 넘어 7000억원 안팎을 기록했을 것으로 증권사들은 추정했다. 독일 아디다스 신발을 100% 생산하는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730억원으로 기존 최대치(528억원)를 경신했을 공산이 크다.

남충일 창신INC 대표는 “신제품 1개당 금형 제작에만 수십억원이 들기도 하지만 매년 신제품 5만 개를 내놓는 등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온 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글로벌 명품 핸드백을 수탁생산하는 제이에스코퍼레이션도 성장세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이 7977억원으로 전년 동기(6434억원)보다 23.9% 늘었다. 신발, 핸드백 분야 성장에 힘입어 지난해 국내 패션 시장 전체 규모는 사상 최대치인 49조5544억원(트렌드리서치)을 기록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ODM 기업이 제품 기획을 강화하고 제조 혁신을 거듭하면 중국 업체의 추격을 물리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라톤 세계신기록 쓴 육상화…기술·노하우 갖춘 '韓 ODM 작품'
개발·디자인 인재 영입에 수월…신발 3300종 오차없이 뽑아내
부산 사하구 신평동에 있는 창신INC 본사. 매년 6900만 켤레의 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 신발을 제조업자개발생산(ODM) 형태로 만드는 이 회사의 연구개발(R&D)센터도 함께 있다. 796명이 해마다 신제품 5만 개를 개발하는 곳으로 국내 신발 R&D센터 중 가장 크다. TKG태광과 화승 등 국내 다른 ODM 업체가 생산 거점인 베트남으로 연구 시설을 이전한 것과 달리 이 회사는 국내 R&D센터를 고수했다. 남충일 창신INC 대표(사진)는 “공장과 R&D센터가 붙어 있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개발과 디자인 분야 최고 인력을 영입하기에 한국만 한 곳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수 인재가 몰려 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육상화들을 창신과 나이키가 공동 개발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본사와 공동 개발
한때 사양길을 걷던 한국 신발산업이 ODM으로 부활하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 리복 등 글로벌 브랜드의 일감을 대거 수주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세계 1위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의 상황을 보면 K슈즈의 높은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키의 전체 수탁생산 업체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ODM을 합해 열네 곳. 이 가운데 나이키 본사 R&D 직원이 상주해 신발을 공동 개발하는 ODM 파트너사는 네 곳뿐이다. 두 곳이 한국 기업인 창신INC와 TKG태광이며 다른 두 곳은 세계 최대 신발 제조사인 대만 파우첸과 펑타이다.

남 대표는 “까다로운 화학 소재를 정교하게 다룰 줄 알고 복잡한 공정을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업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에(시즌별) 생산하는 모델이 보통 150종인데 종류당 22개 사이즈로 총 3300종을 오차 없이 동시 생산해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 일머리가 좋고 똑똑한 한국인이 ODM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성능 신발을 제조하는 오랜 노하우와 기술력을 보유한 것도 한국 기업의 장점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용 부츠에 착안한 나이키 ‘마스야드’, 비행기 단열재로 쓰이는 푹신한 소재를 여러 겹 넣은 마라톤화 ‘알파플라이3’도 한국을 거쳐 나왔다.
◇걷기·달리기 열풍이 호재
한국 ODM이 세계 신발산업의 숨은 공신이 된 이유는 뭘까. 원·달러 환율 상승 덕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그보다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 고품질의 3박자를 성장 비결로 꼽았다. 화승그룹은 연간 8500만 켤레의 아디다스 신발을 생산하는 기간을 주문 후 90일에서 30일로 줄였다. 이 회사는 ODM 형태로 아디다스의 ‘삼바’와 ‘코트’ ‘슈퍼노바’ 같은 인기 상품을 생산한다.
◇신발산업의 경제적 효과
글로벌 기업의 전략 변화도 한국 ODM 업체엔 호재로 작용했다. 나이키가 자사 쇼핑몰을 통한 직접 판매를 강화한 게 대표적 예다. 나이키 본사는 신발 편집숍 같은 다른 유통망에 직접 공급하는 영업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국내 ODM사가 생산한 신발이 나이키 본사의 단독 제품이 빠진 편집숍 빈자리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국내 신발산업의 경제적 효과가 여전히 크다고 주장한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신발산업 고용유발계수는 6.18로 제조업 평균(4.74)보다 높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비율도 38.5%로 제조업 평균(34.8%)을 웃돈다.

장도규 부산테크노파크 슈비즈지원센터장은 “1990년 한국의 신발 수출액(43억달러)이 전체 수출액(650억달러)의 6%, 국가 예산(19조2000억원)의 25% 수준까지 성장했던 저력이 지금의 K-ODM을 키웠다”고 평가했다.

■ ODM(제조업자개발생산)

위탁업체로부터 주문받은 제품을 생산만 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과 달리 제조업체가 제품 기획과 디자인, 생산을 모두 담당하는 방식

부산=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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