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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종전 협상을 개시하겠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과 영토 회복에 부정적으로 발언한 것을 두고 유럽 정상들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4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항복과 다름없는 평화를 허용하는 것은 미국을 포함한 모두에게 나쁜 소식”이라며 “영토와 주권 논의는 우크라이나가 단독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강요된 어떤 평화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을 지지한다”며 “외부 적에 맞서야 할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 간 분열이 일어나선 안 된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실패한 우크라이나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쇠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종전만 생각하고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는 선례를 남긴다면 다른 독재국의 무력 침공 의지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 EU 회원국이 재정준칙을 위반할 걱정 없이 방위비 지출을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추진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유럽 국가의 불안이 커졌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불리한 평화 협정으로 밀어 넣으면 유럽이 더욱 강해진 러시아를 상대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참여 없이 이뤄진 평화 협정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NATO 가입 의지도 굽히지 않았다. FT는 미국이 휴전 후 안전보장을 위해 미군을 배치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희토류 지분 절반을 요구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종전 협상 배제 위기에 내정 간섭성 발언까지 나오자 유럽 지도자들은 공동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 영국·폴란드·이탈리아 정상 등과 17일부터 파리에서 비공식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 가디언은 “마크롱 대통령의 신속한 움직임은 미국 주도의 종전 협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위기를 느낀 유럽의 불안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