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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교역 상대국의 관세는 물론 비관세 장벽까지 고려해 이르면 오는 4월 2일부터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부가가치세와 환율 등을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해 대미 무역흑자국에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대부분 미국산 제품에 무관세를 적용하는 한국도 상호관세 타깃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재무부, 상무부, 미국무역대표부(USTR) 등에 상호관세 부과를 지시하는 지침(메모랜덤)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침에서 “교역 상대국의 관세는 물론 미국 기업과 근로자·소비자에게 부과되는 부가세 같은 세금·보조금·규제, 환율 등 비관세 장벽 및 기타 공정 경쟁을 저해하는 관행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상품 무역적자를 줄이고 무역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하고 불균형한 측면을 해소하기 위해 상호관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초 각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응하는 관세를 매길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각종 비관세 장벽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현재 10%인 한국의 부가세를 걸고넘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엔 부가세와 비슷한 판매세가 있는데 주별로 다르지만 평균 6.6% 정도다. 예컨대 미국산 차가 한국에서 팔릴 땐 10% 부가세를 내지만 한국산 차가 미국에서 팔릴 땐 평균 6.6%를 낸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차이를 비관세 장벽으로 보고 한국에 그만큼 상호관세를 매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서명식에 배석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후보자는 “행정부 차원의 상호관세 연구를 4월 1일까지 마무리하고 대통령에게 4월 2일부터 (상호관세 부과를) 시작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상호관세를) 국가별로 다룰 것”이라고 밝혀 국가별로 검토와 협상을 거쳐 차등화한 관세율을 적용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관세에 대해서도 “곧 발표할 것”이라고 부과 방침을 재확인했다.
상호관세로 美기업 민원 해결하나…"EU 디지털세로 20억弗 뜯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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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비관세 장벽까지 문제 삼았다. 대표적 사례가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에 프랑스 캐나다 등이 매기는 디지털세다. 백악관은 “이런 비상호적 세금이 미국 기업에 연간 20억달러가 넘는 손실을 입히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에서 “지속적인 (미국의) 상품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상호관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도 “중국 공산당 같은 전략적 경쟁자든, EU 일본 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없이 모든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미 교역에서 660억달러(상품 기준) 흑자를 낸 한국도 상호관세 무풍지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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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동차 배기가스 부품 인증 규제도 도마에 오를 수 있다. 미국은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이 문제를 꾸준히 지적했다. 한국의 약가 정책 역시 타깃이 될 수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가 혁신 신약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구글맵 사용을 어렵게 하는 지리 정보 반출 금지도 미국이 꾸준히 불만을 제기해 온 부분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미국 경제계의 ‘민원 해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리안/하지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