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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도입한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이 6년 만에 전면 개편된다. 지난해까지 약 6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청년 역량 개발이라는 도입 취지와 달리 모텔, 술집, 노래방 등 유흥 목적으로 쓰인 사례가 많아서다.
14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9월까지 사용된 청년기본소득 6521억원 중 약 70%(4523억원)가 식당과 편의점을 비롯해 식음료 구매에 쓰였다. 심지어 안마시술소, 성인용품점 등에서 사용된 건수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는 이에 따라 사용 분야를 교육·문화·예술 등 9개로 제한하고, 기존에 중소기업·소상공인으로 한정한 구매 대상 상품·서비스 범위를 대기업으로 늘리기로 했다.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은 경기도에 3년 이상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연간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사업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6년 성남시에 최초로 도입했고, 경기지사에 오른 후인 2019년 도내 31개 시·군으로 확대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개편은 정책 실패를 자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경기 북부, 취업학원 등 태부족…"거주지 인근제한탓 쓸 곳 없어"
신씨는 “지역화폐로 지급돼 파주에서만 써야 했는데, 경기 북부권에는 취업 준비 학원이 많지 않아 활용성이 크게 떨어졌다”며 “결국 식당, 카페, 편의점 등에서 먹고 마시는 데 대부분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 북부에는 청년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가맹점이 경기 남부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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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이재명표 청년기본소득’ 정책을 전면 개편하기로 한 것은 이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실효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무작정 현금을 지급하는 기존 방식이 청년 삶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앞으로는 정책 취지에 맞게 교육·문화·예술 등 9개 분야에서만 청년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4일 경기도 등에 따르면 청년기본소득 개편안은 이르면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대학등록금, 어학연수비, 학원 수강료, 응시료, 면접 준비금, 창업 임차료, 통신요금, 주거비(월세), 문화·예술·스포츠 활동비 등 9개 분야에서만 청년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지급 방식은 기존 분기별 4회 신청·지급에서 1회 신청·일시금 지급으로 변경했다.
소상공인 업소 중심에서 대기업 운영 매장 등으로까지 사용처가 확대되는 것도 주목된다. 지금은 연 매출 10억원 이하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 업체(경기지역화폐 가맹점) 41만8000여 곳에서만 이용할 수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이런 매출 기준이 사라진다. 경기도는 제한이 사라지면 사용처가 크게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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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는 지난해 6월부터 여론조사를 실시해 도의회와 청년기본소득 발전 방안을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네 차례 열었다. 경기도민 약 5000명의 의견을 듣고 청년기본소득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청년기본소득이 사회 진출 초기 단계에 있는 24세 청년에게 미래 준비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긍정 평가가 있었지만 특정 연령에 집중해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고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되며 사용처가 소비성 활동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경기도는 개편안 시행 이후에도 일정 주기마다 정책 효과를 평가하고 사용처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다. 특히 청년의 경제적 자립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추가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개편안이 전임 지사의 정책을 지우려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의지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경기도 관계자는 “정책 실효성을 높이려는 것일 뿐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강조했다.
경기도는 올해 청년기본소득에 예산 1378억원을 배정했다. 인공지능(AI) 사업 확대와 인재 양성 추진을 위해 쓰이는 예산보다 30%나 많다. 도는 지난 10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및 도내 대학과 협력해 AI 전문가 550명을 양성하고 AI캠퍼스를 구축하고자 약 1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수원=권용훈/윤상연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