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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거 옛날거 아냐"…대만 로맨스물 리메이크 '붐' [무비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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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대만 청춘물 한국서 잇따라 리메이크
원작 팬층 확보로 홍보 효과에 수익까지 기대
"원작 명성에 기대 안정적인 작품을 찾은 것"

최근 극장가에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를 원작으로 한 한국 리메이크작들이 잇따라 개봉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소비'가 젊은 층의 관심을 끌면서 흥행 면에서 검증된 리메이크 작품은 영화계에서 활발히 만들어져 왔다. 특히 첫사랑, 청춘의 고민, 가족 등 보편적인 정서에 기반한 대만의 작품들이 한국화된 점이 눈에 띈다.

대만 청춘 로맨스 영화 붐은 2008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국내 박스오피스에서 대만 영화 중 사상 최고 흥행 기록(10만여명)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주인공 주걸륜, 계륜미도 큰 인기를 끌었고 OST '시크릿'도 유행했다.

대만의 대표 청춘 영화로 기억되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 도경수, 원진아, 신예은의 얼굴로 재탄생했다. 지난 1월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초반 '검은 수녀들', '히트맨2'와 같은 쟁쟁한 경쟁작들에 밀리는 추세를 보였지만 14일 기준 43만 5824명의 누적 관객 수를 모으며 롱런 중이다.


한국판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원작의 결을 유지하면서도 인물과 배경 등 설정에 변화를 주며 국내 정서에 알맞게 재탄생했다.

고등학교가 배경인 원작과는 다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대학교 캠퍼스를 배경으로 음악과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며 폭넓은 감정선과 현시대의 리얼리티를 더했다. 또 엑소 출신 배우 도경수와 원진아, 신예은 이라는 '청춘의 얼굴'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이 영화는 실 관람객의 입소문과 함께 N차 관람 릴레이도 벌어지고 있다.

한 관객은 "개봉하자마자 혼자 영화를 보고 또 보고 싶어서 친구 데리고 3차 관람했다"며 "몇 번 봐도 안 질리는 영화다. 볼 때마다 우는 포인트가 달라진다. 영화 속 숨겨진 디테일을 찾는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오는 21일 개봉 예정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개봉 전부터 아시아권에서 이목을 끄는 작품이다. B1A4 출신 배우 진영과 트와이스 멤버 다현이 캐스팅되면서 일찍부터 많은 화제를 모아왔다.

영화 관계자는 두 사람의 캐스팅 소식 하나만으로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았고 일부 지역에선 경쟁적인 비딩이 벌어졌다고 귀띔했다.

한국 영화로서 이례적으로 높은 해외 선판매를 성사시키며 아시아 34개국 순차 개봉을 앞뒀다. 최근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홍보 일정을 진행해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2012년 개봉돼 인기를 끈 동명의 작품을 리메이크했다. 가진동, 천옌시가 주연한 이 영화는 학창 시절 첫사랑이라는 소재로 일부 영화 팬들 사이에선 '인생 로맨스'로 꼽힌다. 한국판 또한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선아에게 고백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보낸 철 없었던 진우의 열여덟 첫사랑 스토리를 그렸다.

대만 청춘 로맨스 리메이크는 이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연말 홍경, 노윤서 주연의 '청설'이 개봉됐고, 인기 드라마 '상견니'는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안효섭, 전여빈 주연의 '너의 시간 속으로'란 이름으로 공개됐다.

각색물이나 리메이크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것은 흥행력이 입증된 원작을 영화화하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국내 영화계엔 범죄 스릴러 장르가 인기를 끌어왔다. 그 틈새를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대만 청춘 로맨스가 비집고 들어간 것.

특히 대만은 한국과 같은 아시아 문화권으로 가족애, 우정, 청춘의 고민 등 보편적인 정서에 기반한 이야기가 많아 한국 관객의 많은 공감을 받았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손익분기점이 100만 수준인 청춘 로맨스 영화는 젊은 층만 볼 거라는 편견이 있지만 30, 40대의 노스텔지어를 자극하기 때문에 관객층이 넓은 편"이라며 "좋은 이야기는 시대를 관통한다. 누군가는 처음 보는 영화지만, 또 다른 이들에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요즘 영화계에 흥미롭거나 발상이 대담한 시나리오의 씨가 말랐다"며 "모험보다는 안정을 택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몇년 간 웹툰, 소설과 같은 작품을 영화화하거나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참신한 이야기가 나오지 못한다. 또 지금 시대의 관객들이 '올드'하다고 느끼는 사례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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