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들어오는 어느 철강이든 25% 관세를 부과받게 될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일 미국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어포스원)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 같은 계획을 깜짝 공개했습니다. 트럼프는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서도 질문받자 "역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 관세에 대한 이야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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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철강·알루미늄 관세 적용 대상에 완제품도 포함된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산 철강이 3국을 거쳐 미국으로 우회 수출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입니다. 가뜩이나 중국발 과잉 공급과 업황 악화에 시달리던 한국 철강기업들에는 큰 악재가 됐습니다.
글로벌 철강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입김이 세진 지 오래됐습니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생산력 기준으로 글로벌 10위 이내에 중국 철강기업들이 6곳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세계 1위 기업은 중국 국영기업 바오우철강입니다. 2위는 2018년까지 13년간 선두자리를 지켰던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아르셀로미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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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셀로미탈은 2006년 철강 1, 2위 기업이었던 아르셀로와 미탈이 합병하여 만들어진 기업입니다. 인도 출신 경영인 락시미 미탈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사를 뒀던 미탈과 스페인, 프랑스, 룩셈부르크 철강회사들이 합쳐진 아르셀로의 합병을 주도했습니다. 그는 앤드루 카네기를 뛰어넘는 ‘철강왕’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매년 세계 부호 순위에 상위권에 항상 올라 있습니다.
미탈은 오랜 기간 동안 철강업계에 뿌리박혀 있던 관념을 뒤엎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20세기 산업 국가들은 ‘철은 곧 국가 주권’라는 기치로 국영기업의 형태로 제철소를 지었습니다. 산업의 뿌리가 되는 철강은 이때까지 자국의 수요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만 수입하는 소극적 교역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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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0년대 이후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자동차, 조선, 기계 등의 철강 기반 산업이 소수의 글로벌 기업만 살아남게 됐습니다. 이런 물결 속에 생산된 철의 상당수가 국경을 넘어 거래됐습니다.
미탈은 이런 흐름을 읽고 해외 국영 철강사를 인수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변수가 많은 제철소 설립보다 기존 회사의 인수합병(M&A)이 단시간에 글로벌 기업을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금 동원력이 뛰어난 투자자들과 손잡고 경영난에 빠진 제철소를 싸게 사들였습니다. 멕시코, 캐나다, 독일, 남아공 등 국영 철강기업을 인수해 빠르게 몸집을 키웠습니다. 미탈로 인해 해외 M&A로 몸집 불리기가 글로벌 철강 업계 트렌드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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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셀로미탈은 2023년 말 기준 세계 15개국에서 제철소를 보유하고 12만6756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25% 관세 폭탄’은 미탈이 구축한 글로벌 철강 자유무역 생태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당장은 아르셀로미탈의 캐나다와 멕시코 제철소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철강의 상당수가 미국으로 국경을 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르셀로미탈은 미국에도 제철소를 갖고 있습니다. 회사 측은 이달 초 앨라배마주에 9억 달러를 투자해 첨단 강철 제조 시설을 건설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캐나다에 있는 광산을 포함하면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의 약 40%가 북미에서 발생한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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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셀로미탈의 또 다른 강점은 북미·남미·동유럽·중앙아시아·아프리카 등 거의 전 대륙에 걸쳐 20개 내외의 철광석 광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의 원료 자급률은 2009년에 처음으로 60%를 넘어섰으며 80% 수준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퍼리의 애널리스트는 "2025년 철강 가격과 수요가 주기적 저점에서 상승하고 있다"며 "올해 아르셀로미탈의 EBITDA는 73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주가는 이 같은 매출 확대 전망에 힘입어 연초부터 오르는 분위기였지만 최근 관세 전쟁 여파로 조정받고 있습니다. 아르셀로미탈은 네덜란드 증권시장인 유로넥스트 암스테르담과 뉴욕 증시에 상장돼 있습니다. 주가는 14일 27.22유로에 마감돼 지난 1년간 7.93%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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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관세 인상 카드를 꺼낸 트럼프는 미국의 자존심이었던 US스틸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US스틸은 1901년 ‘원조 철강왕’ 카네기의 철강사와 다른 철강사들의 합병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트럼프의 관세 인상 카드에 대한 ‘21세기 철강왕’ 미탈의 대응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궁금합니다.
최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