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01.39438493.1.jpg)
오는 14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는 아주 특별한 공연이 열린다. '빨간 맛'·'다시 만난 세계'·'블랙맘바' 등 K팝 명곡들이 83인조의 대규모 오케스트라 연주로 웅장하게 재탄생한다. 'K팝과 클래식의 만남'이라는 전례 없는 시도를 해온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클래식 레이블 SM클래식스가 그들의 존재 이유를 무대 위에서 증명해낸다.
H.O.T., S.E.S, 신화부터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레드벨벳, NCT, 에스파, 라이즈에 이르기까지 SM은 K팝 역사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중추 역할을 해왔다. 무려 30년간 다채로운 그룹을 제작해 온 SM은 'K팝의 뿌리'로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기획사다. 1990년대 H.O.T.를 데뷔시키며 'K팝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내놨고, 아티스트 및 음악에 콘셉트와 세계관을 부여해 주목받았으며, 일찌감치 해외 진출을 도모해 한류에 불을 붙였다.
K팝 팬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SM은 음악에 진심이다"라는 평가는 엔터 업계 최고의 칭찬이다. 하나의 사례로 꼽히는 게 바로 SM클래식스다. K팝과 클래식.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르를 과감히 결합하며 줄곧 추구해온 음악적 다양성의 가치를 더욱 확고히 했다. 2020년 설립된 SM클래식스는 SM 소속 가수들의 명곡에 친숙한 클래식을 접목, 오케스트레이션한 음원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지난달에는 총 14개 트랙이 담긴 정규앨범을 발매했으며, SM의 서른 살 생일에 맞춰 첫 공연까지 하게 됐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01.39438501.1.jpg)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만난 문정재 SM클래식스 대표는 "설레기도 하고 매우 떨린다"면서 "첫 곡이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갈 때의 정적, 관객들의 기침 소리, 조명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접하는 팬분들도 있을 텐데 이런 분위기를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SM 창립기념일에 공연이 진행되는 것과 관련해서는 "무한 확장하는 'SM 3.0'의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30주년이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다"면서 "30년의 세월을 가장 많이 체감하는 분은 바로 팬들일 거다. 직원분들에게 만족감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무엇보다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SM클래식스의 행보는 '최초'이자 '독보적'이었다.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의 기세를 이어받아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다이내믹한 레드벨벳 '사이코' 연주가 이어지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제2번 3악장의 서정적인 선율이 치고 들어오면 울컥하는 기분마저 든다.
엑소 '으르렁'에 녹아든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은 원곡의 거친 느낌을 한층 입체감 있게 풀어내고, 종현 '하루의 끝'이 지닌 뭉근한 위로의 메시지는 클로드 드뷔시의 '달빛'과 만나 더 깊숙이 가슴을 파고든다. 정규앨범에 새롭게 담긴 신곡 동방신기 '라이징 선'은 원곡의 강렬함에 걸맞게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이 곡의 시작을 열어 강한 쾌감을 안긴다. 각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K팝 팬과 클래식 애호가 모두의 시야를 터주는, 충격적이게 좋은 청각적 경험이다.
"작업이 쉽진 않다"며 혀를 내두른 문 대표는 "K팝 음악은 이미 어떠한 분위기로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태이지 않나. 디테일을 살리려면 세세한 부분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열 마디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모든 악기를 고쳐야 하는 거라 우리에겐 대작업이다. 또 K팝은 미디로 트랙을 빈틈없이 쌓지만, 우리는 타악기 몇 대를 활용하고, 목관악기나 금관악기로 타악기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것저것 열심히 해보다 보니 결국 우리만의 어법이 탄생하더라"며 미소 지었다.
가장 신경 쓰는 건 '원곡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문 대표는 "기존의 IP를 가지고 팬들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게끔 다시 만드는 거지 않나. 그럼 팬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곡을 악기로 구사하기 때문에 노랫말이 없는데 그건 팬들의 몫인 거다. 듣고 '이게 무슨 곡이야?'라고 느낀다면 따라부를 수가 없다. 멜로디를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다른 형태로 바꾸면서도 팬들은 계속 원곡을 떠올리며 흘러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01.39438555.1.jpg)
줄리아드 프리 칼리지를 거쳐 독일 하노버 국립 음대를 졸업한 문 대표는 그야말로 '클래식 정석'의 길을 걸어온 피아니스트다. 그런 그가 K팝의 손을 잡은 데에는 이성수 CAO(A&R 최고 책임자)의 영향이 컸다. 과거 SM의 프로듀싱 본부장까지 맡았던 이 CAO는 SM의 다양성 확보를 주도해 온 인물이다. 문 대표와의 인연 역시 2016년 여러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며 일주일에 한 곡씩 발표하는 프로젝트 'SM스테이션'을 통해 시작됐다.
문 대표는 이 CAO를 "음악에 미친 분"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저 사람에게서 음악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싶은 정도로 음악에 진심이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여러 사람을 찾아다닌 것 같더라. 클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문 대표는 "나 역시 클래식 외에 재즈 연주도 하러 다니고, 몰래 K팝 녹음도 하러 다녔던 사람"이라며 웃었다. 독일 유학 중에도 '왜 꼭 클래식만 들어야 하는가'라는 반골 기질이 있었다면서 "어렸을 때부터 K팝을 많이 들었다. 유학 시절 TV를 켰는데 H.O.T.의 '위 아 더 퓨처'가 나온 적이 있다. 삼성이 지금처럼 유명해지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놀라웠다. 그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렇게 뛰어든 K팝 산업 안에서 각종 경험을 하며 "배워나가는 중"이라는 그였다. 문 대표는 "NCT U의 '메이크 어 위시'를 작업할 땐 도저히 마음에 드는 시안이 나오질 않아서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 택시 안에서 지금의 시안을 받았는데 눈물이 났다. '다시 만난 세계'는 MOU를 체결했던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학생들과 협업했는데 소통하며 조율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여러 작가님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서로에게 배우는 부분들이 생기더라"고 고백했다.
이어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혼자 있는 걸 원하고, 짧은 영상에 강하게 반응하고, 휴대전화에 의지하면서 음질도 변해가는 가운데 자극적인 걸 이기고 더 아름다운 음악을 뽑아내려는 노력이 있다. '어떻게 하면 팬들이 더 좋아할까', '저번에 했던 방법을 또 쓰면 지루하지 않을까', '어떻게 해야 이 멜로디가 더 생각날까' 등의 생산적인 고민을 쉼 없이 한다. 노력과 배움, 경쟁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산업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https://img.hankyung.com/photo/202502/01.39438500.1.jpg)
SM클래식스는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현재 SM 재즈 트리오, 요한킴 등이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기존 IP를 리크리에이티드하며 2차 저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더해 자사 아티스트들을 통해 오리지널 IP까지 개발하고 있다.
문 대표는 "재즈 및 클래식 아티스트 영입으로 활동 범위가 한층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SM 가수들과의 컬래버레이션도 폭넓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예로 앞서 'SM타운 라이브'에서 SM 재즈 트리오와 강타·NCT 재희가 함께 꾸민 '북극성' 무대, 코엑스에서 진행한 NCT 도영·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오는 15일 공연에서 이뤄지는 레드벨벳 웬디와의 협연 등을 언급했다.
"왜 가요 기획사인 SM에 클래식 레이블이 있어야 하는 걸까요?"
문 대표는 답했다. "SM은 K팝 회사라기보다는 문화 기업인 것 같습니다. 음악의 본질을 생각하고, 어떤 장르든지 좋은 음악이라면 받아들이는 회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클래식이라는 게 몇백년이 지나도록 기억돼야 비로소 그 레퍼토리가 클래식으로 남는 거잖아요. SM의 곡들이 그렇습니다. 앞선 30주년 콘서트에서 NCT 드림이 H.O.T.의 '캔디'를 부르는데 강타·토니안 씨가 나와서 같이 무대를 했죠. 그게 클래식인 겁니다. 100년 뒤에도 '캔디'가 살아있고, H.O.T.를 기억한다면 그땐 '캔디'가 클래식 곡이 되지 않을까요?"
'SM클래식스 라이브 2025'는 서울시립교향악단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된다. 14일에 이어 15일까지 총 2회 열리며, 15일 공연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된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